(23)원료 해외의존도 너무 높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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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성들에게 화장품이 생활필수품이듯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공산품과 건축물중에서 페인트와 무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완성제품이 아닌 「마감재」로서 단독으로 페인트처럼 어떤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여주는 상품도 찾기 힘들다.
예컨대 주택용 짓는데 도료비는 총건축비의 2%에 불과하지만 도색이 건축의 성패를 좌우한다.
페인트산업의 특징은 전형적 내수산업인데다 관련산업의 경기에 민감한 종속재라는 점.
그런만큼 40년부터 시작된 페인트산업의 성장과정은 전체 국내경기의 부침과 궤를 같이 한다. 또 주종품목도 국내산업의 성장과정과 시대상을 반영해 왔다. 6·25직후에는 전후복구에 따른 에나멜류가 대종을 이루였고 5·16후에는 문화재 보호운동에 편승, 단청도료의 수요가 급격히 늘었으며 시영아파트건설이 본격화된 60년대 후반에는 수성페인트가 처음 선을 보이면서 주종상품이 됐다.

<올림픽때 큰 재미>
그 이후에도 새마을운동이 본격화된 70년대초에는 지붕용·기와용도료, 70년대 후반에는 공업용도료, 80년대에는 특수산업용도료라는 식으로 주종상품을 바꾸면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페인트업계가 본격적 성장기를 맞은 것은 역시 70년대의 건설경기를 타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고 그 후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올림픽특수를 배경으로 본궤도에 올랐다고 할수 있다.
86년이후 88년까지 3년간 연평균 매출액 신장률이 16·7%에 달한것이 이갈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현재 국내 페인트시장규모는 연간 6천억원규모. 이 시장을 대소 1백50여개 업체가 나누어 갖고 있다.
이중 연간 매출액 70억원이상인 상위 10개가 전체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그 중에도 고려화학·대한페인트잉크·조광페인트·건설화학 등 4개사가 전체시장의 50%를 지배, 과점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런만큼 나머지 1백40여개사의 몫은 적을 수 밖에 없고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페인트업계에서는 연간매출액이 30억원을 넘게되면 성공한 회사로 인정받게 되며 업체의 부침이 심해 「문을 열기도 쉽고 닫기도 쉽다」는 말이 업계의 실정을 대변하고 있다.
실제로 88년말기준 종업원1백명이상 회사가 18개사에 불과하며 자본금 10억원이상업체가 27개뿐일 정도다.
반면 상위권의 대회사들은 기업규모면에서 다른 업종에 비해 손색이 없다.
페인트업계 최대회사인 고려화학(대표 김충세)의 경우 종업원 1천명에 88년 매출액이 1천4백20억원에 달했으며 그밖에도 건설화학(대표 황성활)이 종업원 8백58명에 매출액 7백17억원, 대한페인트잉크(대표 한영재)가 종업원 1천2백명에 매출액 6백2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페인트업계에 양지와 음지가 나누어지고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제품의 생산기술과 품질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도 페인트업종의 다른 사업에 대한 종속성 때문에 안정적인 수요기반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쇠가 걸려 있기 때문
자동차·선박 등 중화학공업에 쓰이는 도료의 경우 대기업들이 계열페인트사에서 도료를 공급받으려 하기 때문에 일반 군소업체들은 참여할 생각도 하기 힘들며 결국 범용성이 큰 건축용도료시장을 놓고 대형사들과 맞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 않을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수요기반을 갖고 있는 현대관계사 고려화학, 대우관계사 동주산업 등이 10년안팎의 짧은 기간동안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둬 업계를 리드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동주산업은 업계랭킹 6위에 머물고 있지만 신데렐라처럼 급부상한 업체로 주목을 끌고있다.
반면 40년대초에 설립, 70년대초반까지만 해도 업계 선두자리를 고수했던 삼화페인트가 지난해 5위로 밀려나고 역사가 깊은 조광페인트가 고려화학에 밀리고 있 는것은 이같은 실정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현재 페인트업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영세성외에도 낙후된 기술의 개발, 원료의 지나친 해외의존도, 태부족상태인 전문인력 등 한 두가지가 아니다.
기술수준은 8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아메론사 등 유명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 마그네틱 테이프용 도료, 전자파 차폐용모료를 개발한데 이어 고도의 정밀기술을 요하는 원자력발전소 내방사선도료를 만드는 등 일부부문에서는 선진국에 버금가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동남아각국으로부터 기술제휴 및 합작투자 요청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 건설화학과 조광페인트가 제조 기술을 해외에 수출하기도 했다.

<외국업체와 제휴>
그러나 아직도 특수산업용과 첨단제품용 도료의 국내생산은 거의 불가능해 중요한 안료등은 외국에서 수입해오고 있다.
원료의 해외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도 큰 문제다.
지난해의 경우 주원료인 안료30%. 첨가제50%, 전색제35%, 용제10%를 각각 수입했다.
이와관련, 고려화학의 고주석상무는 『외국으로부터 수입의존도가 60%에 달하는 여건에서 원자재의 구득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환차익을 얻어야하는 상황에서도 원가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고 설명하고 원자재의 안정적인 공급원 확보가 업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대형회사들의 덤핑판매나 군소업체의 저질도료 생산도 페인트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같이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계에서는 외국유명 도료업체와 기술제휴로 선진기술을 끊임없이 도입하는 한편 도료의 종류가 다양한점을 감안,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위해 전문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려화학은 자동차용, 삼화는 건축용 등으로 특화하는 추세를 보이는것이 그 예다.

<덤핑판매가 고질>
이와함께 건설·현대·조광등에서는 소량주문에 응할 수 있는 협력공장을 갖고 있거나 추진중에 있다.
페인트업계가 이처럼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래도 페인트업계의 전망은 무척 밝은 편이다.
컬러TV의 방영이후 국민들의 색채감각이 다양화한데다 아파트의 신축, 기간산업의 발전등으로 도료의 사용량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1인당 도료사용량(85년기준)을 봐도 덴마크 24kg, 미국19kg, 일본 l6kg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아직 6·5kg수준에 머물고 있어 앞으로의 성장잠재력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볼때 올해에는 노사분규로 인한 연관산업의 위축으로 다소 성장세가 주춤할 가능성은 없지 않지만 그래도 10% 성장은 무난하며 해마다 수요가 늘어나 90년대 중반에는 도료시장 규모가 1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업계에서는 점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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