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 묘연한 통일방안|김두우<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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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 정부의 통일의지에 회의를 품고 북측 통일방안을 동조·지지하는 세력이 날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실정을 우려하는 많은 국민들은 정부의 통일방안 제시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문익환 목사의 방북, 전대협의 평양청년축전참가 추진 등에서 보듯 이제 우리 사회의 각분야에서 부분 대표성을 자임하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북측 상대자와 만나겠다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년여 이런 움직임에 질질 끌려가다가 뒤늦게 극력 제지하는 방침을 굳히고 문목사와 고은씨 등 몇몇 인사들을 구속까지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정부는 스스로의 약속은 이행치 않고 여론과 시류에 편승해 통일정책을 다룸으로써 일부 국민들로부터 덫을 놓아 걸리는 사람들을「일망타진」하자는 속셈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작년10월4일 국회에서 행한 국정연설을 통해『국민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새 공화국의 통일방안을 가까운 시일 안에 국민들에게 제시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를 받아『새 통일 방안은 빠르면 이 달 (10월)내, 늦어도 11월까지는 제시될 것』이라고 부연설명 했다.
북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에 대응하는 통일방안이 곧 가시화 되리라는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 성과 없이 88년을 넘기자 이홍구 통일원장관은 금년 1월초에『2월에는 새 통일방안을 제시해 국민여론 수렴과정을 거쳐 확정하겠다』고 다시 약속했다.
그러나 통일원측은 5월인 지금껏 그에 관해 일언반구의 제시도 않은 채 이제는 통일방안이 4당 합의에 의해 마련돼야 한다고 정치권에 떠넘기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통일방안이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해야 대북협상에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통일원의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정치권이 진지하게 검토·논의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게 통일방안의 골격마저 제시하지 않고 그때그때 편리한대로 핑계만 대는 듯한 인상을 주는 점이다.
정부는 지금껏 자기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다가 좌경을 위험시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자 과격 통일론자 들만 구속한다면 곧 그 정당성에 도전을 받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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