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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흐린줄 알았는데 미세먼지요?"…무방비 외국인 관광객

중앙일보

입력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 외국인(왼쪽). 하지만 한국을 일시적으로 찾은 관광객들은 미세먼지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른쪽 사진은 14일 오후 서울 남산서울타워의 모습. [연합뉴스, 임현동 기자]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 외국인(왼쪽). 하지만 한국을 일시적으로 찾은 관광객들은 미세먼지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른쪽 사진은 14일 오후 서울 남산서울타워의 모습. [연합뉴스, 임현동 기자]

“그냥 날씨가 흐린 줄만 알았지, 미세먼지라는 건 처음 들어봤어요.”

수도권에서 최초로 사흘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된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만난 미국인 모랄리(42)는 이렇게 말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한국인들을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던 그는 “눈으로 볼 때 평소랑 다른 것 같긴 했지만, 가끔 흐린 날도 있는 법이니 별로 신경쓰고 다니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일 미세먼지가 도심을 뒤덮으면서 시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지지만, 이날 기자가 만난 외국인 관광객은 무방비 상태로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미세먼지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코엑스 케이팝(K-POP)광장을 찾은 말레이시아 출신 에바(29)도 미세먼지가 심각한 것을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처음 들어봤다”고 답했다. 에바는 유모차 2대에 아이들을 태우고 나왔지만, 유모차의 창은 활짝 열려 있었다. 기자로부터 미세먼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에바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곳곳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출근길에 오른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곳곳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출근길에 오른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을 보였던 13일에도 기자가 서울 시내에서 만난 한국인 3명 중 1명꼴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만난 외국인 중 마스크를 쓴 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세먼지의 개념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미국인 칼빈(32)은 한국의 미세먼지 문제와 해로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한국 사람들이 마스크를 정말 많이 쓰고 다녀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에는 아픈 사람이 많은 줄 알았다. 외국에서 마스크를 쓰는 일은 아주 특별한 경우”라고 말했다. 한국에 여행 온 지 사흘째라는 산드라(24)는 “한국에 온 지 하루가 지난 후 한국인 친구에게 왜 이렇게 공기가 뿌연지 물어봤고, 한국인 친구가 미세먼지를 설명해줘서 알게 됐다”며 “몸에 많이 안 좋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재난경보 문자메시지로 미세먼지 위험성을 알리고 있지만, 한글을 잘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다. 현재 서울시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웹사이트 ‘비짓서울’에 게시된 미세먼지 예보가 있지만, 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사이트를 찾아가야 볼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밖의 특별한 안내는 없다”면서 “관광안내소에 미세먼지 매뉴얼은 있지만, 관광객들에게 제공되는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14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미세먼지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찬 외국인. 하지만 기자가 찾은 현장에선 대부분의 관광객이 미세먼지라는 것을 잘 모른 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뉴시스]

14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미세먼지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찬 외국인. 하지만 기자가 찾은 현장에선 대부분의 관광객이 미세먼지라는 것을 잘 모른 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뉴시스]

행안부가 만든 ‘이머전시 레디’(Emergency Ready) 앱으로 영어와 중국어로 미세먼지 예보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 거리에서 만는 외국인 중 이 앱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김철원 경희대 컨벤션경영학과 교수는 “외국인 관광만족도를 조사해보면 환경 만족도가 굉장히 낮다”면서 “처음 한국에 온 외국인은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잘 모르지만, 귀국한 뒤에 심각성을 인지하기도 한다. 그럴 때 상당한 실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에게 미세먼지의 개념을 분명히 설명하고 대응 방법을 설명하면 오히려 정부가 환경 문제를 면밀히 관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남궁민·김다영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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