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교수가 주도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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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의대 참사사태 이후 엿새째. 화염병과 각목·최루탄이 난무했던 학원은 잠잠해졌고 휴업으로 20여일째 굳게 닫혔던 고려대·한림대 의문이 활짝 열렸다. 비폭력시위와 자숙의 공감대가 대학 내부와 대학 밖 사회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불의의 사태로 인한 공감대고 자숙의 분위기일지라도, 여섯 젊은 경찰관의 희생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 다음에서야 얻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처럼 힘들게 쌓여진 이 소중한 교훈을 앞으로 어떻게 새겨야 하느냐에 대학은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비폭력과 자숙의 분위기가 운동권의 일시적 전략으로 끝나서도 안되고 이 자숙의 분위기를 틈타 젊은 지성들의 민주화 요구가 좌절돼서도 안되기 때문에 오늘의 공감대를 보편적 질서로 정착시킬 수 있는 방안을 대학 내부에서 연구해야만 한다.
평화적 시위, 이성적 해결을 위한 민주적 학내 질서가 일상화되고 전통화 되기 위해선 먼저 대학 사회를 구성하는 학교당국·교수집단·학생단체 모두가 오늘의 비폭력 자숙의 공감대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개선과 개혁의 원점에 서서 대학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대학 사회를 소요와 폭력의 현장으로 몰고 간 시발점이 등록금 동결과 부정입학·총장선출이라는 학내문제에 있었음을 돌이켜 생각해야 한다. 비록 이 문제들이 운동권의 정치투쟁을 위한 세력규합의 빌미였다 할지라도 다수 학생들이 대학 내의 비민주적 운영에 대해 공감했고, 함께 맞서 투쟁했다는 점에서 학교 당국과 재단은 깊은 반성과 대담한 개혁의지를 보여야 한다.
동의대 사태의 시발점이 결국 재단 측의 비합리적 운영에 있었음을 깊이 반성해야 하고, 이의 개선을 위한 분명한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폭력시위에 질질 끌러 마지못해 내놓는 개선 안이 아니라 공권력에 힘입어 어물쩍 넘어가며 은폐하려는 지난 시절의 방식에서 벗어나 학교발전을 위한 길이라면 앞서서 고치고 실천하는 선도적 조치를 취할 때 대학의 문제는 장기적으로 치유될 수 있다.
대학을 기업시하는 지난 시절의 사학재단 운영방식에서 벗어나 대학사회의 연구기능과 학습 기능을 어떻게 하면 진작시킬 수 있느냐에 재단과 대학 당국이 주도권을 행사하게 될 때 재단은 재단으로서의 자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내 강의, 내 교실만 꾸러나가면 된다는 교수들의 안일한 자세 또한 이번 사대를 계기로 크게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재단과 학생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학집단의 생명인 연구와 학습의 기능을 위해 그것의 주도권을 장악해야 마땅할 교수들은 더 이상 학원이 폭력화되는 일이 없도록 강한 자신들의 태도표명과 집단의사의 실천방식이 요구된다.
재단 측의 비합리적 운영방식에 학생들 보다 앞장서 그 개선을 요구해야 했으며 학생들의 무모한 요구와 행동에 대해서는 용기 있는 설득과 질책을 내렸어야 했다. 재단과 학생들의 횡포가 있다면 이와 맞서 대학사회를 이성이 지배하는 학문의 현장으로 이끌어 가야할 1차적 책임이 재단과 학생이 아닌 교수집단에 있음을 공동 인식하는 공감대가 교수집단 전체에 확산되어야 한다.
재단이 학교 운영을 선도적으로 개선해 나가고, 교수집단이 이를 지켜보며 재촉하고, 학생들의 학습분위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때 비폭력·자숙의 분위기는 장기적으로 정착될 것이고 대학사회의 일상적 규범으로 자리잡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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