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련」시련…거듭나기 몸부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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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월21일 40대 활동가 중심으로 재야운동권을 통합해 힘차게 발족했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이부영 상임공동의장의 구속에 이어 8일 정부당국에 의해 결성 선언문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사 받게되는 등 시련에 봉착했다.
이부영·장기표·김근태씨 등이 지난 대통령선거 후유증으로 한때 침체상태에 빠졌던 재야운동권을 통합해 출범시킨 전민련은 중평실시가 유보되고 문익환 고문의 방북여파로 이부영 상임공동의장이 구속된 데다 강령의 일부가 이적단체 찬양고무혐의로 몰리고 정부의 잇따른 재야 강경 대책·동의대 사태의 여파로 인한 국민들의 운동권에 대한 사시가 겹 쳐 새로운 진로 모색에 부심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구속된 이부영씨 대신 이창복 씨를 임시상임 공동의장으로 지도부를 재구성, 수세를 반전키 위한 5월 투쟁방향을 설정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이창복씨 마저 국가 보안법위반혐의로 가택수색을 받고 있다.
특히 동의대사태로 사회분위기가 과격·급진적 움직임에 냉담하게 흐르는 시점이어서 전민련의 대응 폭이 상당히 제약받는 환경인 점도 전민련 에는 대단히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어 전민련이 주장하는 정부의 대 탄압 국면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관심거리다.
당국의 이 같은 초 강경 조처가 전민련이 5월 광주항쟁기간을 전환점으로 야당과의 연대 및 노태우 정권 퇴진운동을 강하게 벌이려는 시점에 나와 한층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된 셈이다.
전민련은 그 동안 문 고문 방북사건과 관련한 간부들의 구속 및 수배, 노사·학원분규의 격화로 인한 정치권을 포함한 비판여론의 확대에 따라 위축된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달 26일 열린 야3당 총재회담이 『좌익세력의 확산을 경계』하고 『노사문제가 제3자 개입의 정치투쟁으로 변질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합의한 것도 전민련의 투쟁노선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기 때문이다.
전민련은 또 노동운동과의 연대강화를 위해 지난 4월30일의 여의도 노동자대회에 대한적극 지원을 결의하고 이창복 공동의장 등을 대회 준비위원장단에 참여시켰으나 당국은 이날대회는 물론 지난 4일 마-창 전국노동자 대회를 원천봉쇄, 무산시켰다.
특히 동의대사건은 급진폭력세력에 대한 강력한 비난여론을 환기시켰고 정부의 재야강경 대응책에도 명분을 강화해 주었다.
전대협마저 지난 6일 평화·비폭력 집회원칙을 선언한 분위기에서 전민련은 『정부와 학생 모두 반성해야 한다』는 이례적인 성명을 낼 형편이 됐다. 이처럼 출범 1백여 일만에 최대위기에 몰린 전민련은 5월 광주항쟁기간을 반 노태우 세력결집에 최대한 활동, 열세를 만회해 나간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어느 정도 이 같은 주장이 먹혀들지 회의적인 것도 사실이다.
전민련은 지난달 26일 2백60여 개 산하단체 대표자회의에서 5월18∼27일을 「광주민중 항쟁계승 노태우 정권 퇴진투쟁기간」으로 정하고 노동자·농민·학생·여성·교사·종교· 예술인들과 연대해 총력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한 바 있다.
이 기간 중 전국규모 혹은 지역별 동시다발적 집회를 벌이되 5공 비리·광주사태·악법개폐 등 대중적 호소력이 있는 3대 이슈를 쟁점화해 지지기반을 넓히고 야당과의 연대를 모색한다는 전략이다.
이와 관련 전민련·전대협·임투본·전교협 등이 지난 4월 결성한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는 명칭을 「광주학살 5공 비리주법 노태우 정권퇴진을 위한 공투본」으로 변경했고 9일 재야연합으로 서울에서 이경현양 사건 규탄대회를 열어 반 노 분위기 확산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전민련은 퇴진 투쟁기간에 앞서 13일 전남대에서 「광주 민중항쟁계승·광주학살원흉 처단·민족민주운동 탄압분쇄 제1차 국민대회」를 단독으로 주최, 광주이슈를 선점하고 투쟁 분위기를 주도할 방침이다.
전민련은 20일께 서울에서 공투본과 연대해 제2차 국민대회를 열 방침이며 6월에도 6월 항쟁 2주년 기념대회를 축으로 정치투쟁을 계속할 예정이다.
전민련은 제도권 야당과 노선을 달리하더라도 탄압국면타개와 대중적 지지확보를 위해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연대를 모색하고 있으며 또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야권이 어느 정도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전민련은 지난 4일 전민련사무실 기습 테러사건에 대해 평민·민주 양당이 즉각 진상규명요구 성명을 낸 것을 우호적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현재와 같은 정부의 강성기류가 지속되면 야당의 속성상 제동을 걸고 5공 청산이라는 이슈를 재야에만 맡겨두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평민 당은 김대중 총재가 지난6일 내각 총 사퇴요구로 대여공세를 시작했고 민주당도 5공 청산을 강도 높게 외칠 것으로 관측되어 전민련은 여야대립 구도와 이에 따른 야당과의 일정한 공동 이슈 확보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전민련의 이 같은 희망적 관측에도 불구, 여론에 민감한 제도권이 전민련의 투쟁노선에 얼마만큼 체중을 실어줄지, 또 국민들이 전민련의 강경 투쟁에 얼마나 호응할지, 그리고 무엇보다 조직와해를 시도하는 당국의 강경 조처에 전민련이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해 전민련의 앞날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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