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택시 기습파업 왜 일어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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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냉각기간 시한인 8일까지 파업만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던 서울회사택시 노조측이 2일 새벽 기습적으로 파업에 돌입, 택시노사분규에 안일한 자세로 관망하던 서울시에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1일 시청 앞 정적시위에 이어 2일 교통부 앞, 3일 노동부 앞, 4일 청와대 앞 정적시위 등 8일까지 준법투쟁 프로그램까지 마련했던 노조측이 불법파업강행으로 치달은 데 대해 노조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노조집행부는 당초 ▲재야·노동운동세력에 대한 공권력 일제수사 ▲불법파업에 대한 공권력개입 가능성이 높고 ▲시민여론이 긍정적이지 못하다는데서 적어도 2차 냉각기간이 끝나는 5월 8일 이전까지는 파업이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되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1일 오후8시부터 2일 오전2시까지 6시간동안 논쟁·투표를 거쳐 파업으로 급선회한 까닭에 대해 노조 간부와 주변관계자들은 가장·큰 이유로 『직권중재결정이 임박해진데다가 파업강행을 주장하는 각목부대 조합원들의 공포분위기가 영향을 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익사업인 택시분규에서 직권중재결정이 떨어져 행동의 폭이 더 좁아지기 전에 행동돌입이 오히려 낫다는 의견이 이날 비상총회에서 제기돼 강경분위기를 이끌었다.
이에 따라 전체조합원들의 투쟁열기가 지난달 17일 보라매공원 결의대회에서 본 것처럼 엄청나게 고조된 데다 어차피 파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집행부 자체의 존립조차 위태로울 것이란 판단을 세워놓고 있어 2일 새벽 불법이지만 쉬운(?) 파업강행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주변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또 이날 비상총회의 분위기를 경화시킨 직접적인 이유의 하나는 사용자측이 교섭위원들을 매수하려고 했던 움직임이 노조측의 입을 통해 폭로됐기 때문.
1일 오후 농성장소에 몰려든 택시기사 5백여명이 매수소문에 대한 사실여부를 추궁하자 교섭위원 7명 전원이 『노조운동에서 손을 떼고 이번 협상을 원만히 타결해 주면 개인택시 1대씩과 7백만원을 주겠다는 각개격파식의 제의가 있었으나 거절했다』고 폭로, 전체 조합장들을 격앙시켰다.
이어 이날 오전10시까지 정회를 선언하는 순간 호루라기신호등에 맞춰 각목 등을 든 조합원들이 회의장으로 들어가 기물을 부수는 등 소동을 피웠고 이 과정에서 조합장 1명이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실려가는 등 공포분위기가 연출됐다. 이후 정회선언이 번복돼 오전2시부터 회의가 다시 시작되고 각목을 든 조합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된 투표결과는 파업으로 기울기에 이르렀다.
거기에다 1일 도심경적 시위로 40여명이 경찰에 연행되자 집행부도 더 이상 버텨볼 도리도 없어지게 됐고, 사용자측이 내놓은 교섭안과 노조측주장과는 너무 격차가 커 협상을 통한 타결은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결국 2일 파업결정은 사용자측과의 협상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오히려 매수움직임이 폭로된 데다 직권중재에 대항할 세불리를 느낀 집행부측이 고조된 조합원들의 열기를 바탕으로 선제공격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노조집행부는 「너무 미온적이지 않느냐」는 내부조합원들의 불만은 누그러뜨렸지만 스스로 불법이란 족쇄를 참으로써 운신의 폭은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툭하면 파업이냐」며 여론이 불리하게 흐르고 있고 사회상황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어서 파업결정을 내려놓고서도 노조집행부는 초조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이철호 기자>

<택시 노사분규 일지>
▲1.20 89년도 조합장 정기총회 완전월급제쟁취 결의
▲3.8 1차 완전월급제쟁취 중앙결의대회
▲3.13 1차 단체교섭
▲3.14∼4.13 9차례 지역별 결의대회
▲3.16 2차 교섭 -양측 교섭안 제시
▲3.24 3차 교섭-완전월급제 쟁점화
▲3.25 4차 교섭
▲3.27 5차 교섭
▲3.28 6차 교섭 결렬
▲4.6 1차 조합장 임시총회-쟁의 결의
▲4.8 1차 쟁의발생신고 172개 노조
▲4.10 2차 쟁의발생신고 47개 노조
▲4.12 3차 쟁의발생신고 16개 노조
▲4.12 알선회의(서울지방노동위)
▲4.14 4차 쟁의발생신고 7개 노조
▲4.17 2차 완전월급제쟁취 중앙결의대회
▲4.18 5차 쟁의발생신고 4개 노조
▲4.18 1차 조정회의(서울지방노동위)
▲4.20 2차 조정회의
▲4.22 3차 조정회의
▲4.22 사용자측 중재신청
▲4.23 4차 조정회의
▲4.23 서울지방노동위 중재로 냉각기간 5월 8일까지 연장
▲4.25 2차 조합장 임시총회 파업유보 준법투쟁결의 조합장 무기한 농성돌입
▲5.1 시청앞 등 도심 경적시위
▲5.2 파업결의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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