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신보, 수천억 빚 떠안을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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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자금난을 겪던 중소 벤처기업이 회사채를 담보로 발행한 회사채담보부증권(P-CBO)에 보증을 섰던 기술신용보증기금이 수천억원대의 보증손실을 보게 됐다.

채권상환 책임이 있는 벤처기업들이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잇따라 도산하는 바람에 기술신보가 고스란히 그 손실을 떠안게 된 것이다.

내년 5월 이후 P-CBO의 만기가 돌아오면 6천2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돼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상당부분을 메워줘야 하는 상황이 우려된다.

25일 기술신보에 따르면 2001년 5월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발행된 1조9천억원의 P-CBO에 대해 기술신보는 원리금을 합쳐 2조3천억원의 보증을 섰다. 그해 12월까지 8백8개(중복 제외) 중소 벤처기업이 보증지원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첫해부터 기업들이 부도로 쓰러지면서 해가 갈수록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01년 4개 업체에서 61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84개 업체에서 1천4백억원의 손실이 났다.

특히 올 들어서는 8월 말까지 무려 1백11개 기업에서 2천18억원의 손실이 났다. 지금까지 보증지원을 받은 8백8개 업체 중 1백65개 업체에서 모두 3천6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기술신보 관계자는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지금 추세대로 기업들의 어려움이 지속된다면 내년 말에는 손실액이 6천2백억원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P-CBO의 부실 규모가 늘어난 데 대해 기술신보 측은 벤처업계 경기가 악화된 데 주요 원인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가 단기간에 대대적인 보증지원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성장 전망이 없는 기업들까지 무더기로 보증혜택을 주는 바람에 부실이 예상보다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신보는 예상되는 손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보증을 받은 기업들로부터 받은 전환사채를 처분해 1천억원을 마련하고, 발행 당시 받은 보증료 6백억원도 손실을 메우는 데 쓰기로 방침을 정했다.

정부가 당초 기술신보에 출연한 2천3백억원은 고스란히 날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술신보 자체의 자구노력분 7백억원을 제외하면 나머지 1천6백여억원은 정부가 예산에서 지원할 수밖에 없다.

기술신보 측은 정책적인 목적에서 추진된 사업인 만큼 손실을 정부가 전액 보전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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