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SK가스배 신예 10걸전 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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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신예대회가 있다. 나는 새도 떨어진다는 험악한 관문이며 한국바둑의 왕성한 힘 또한 바로 이곳에서 분출된다.

이 신예대회 결승에 나갈 정도의 강자들은 그 실력이 조훈현.이창호.유창혁.이세돌의 4강과 근접해있고 또한 이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미완의 대기들이다.

그러나 이번 SK가스배 신예프로10걸전의 우승컵을 놓고 격돌하는 조한승6단과 백대현5단 두 신예의 얼굴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조6단은 21세. 그는 신예최강에 걸맞은 한창 물오른 실력자다.

조6단은 대뜸 "신예대회는 이번 우승으로 졸업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조6단은 올해 삼성화재배와 LG배 등 두곳의 세계대회에서 본선에 올랐고 LG배는 현재 8강에서 대기 중이다. 국내기전은 5개의 본선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신예대회는 이미 2년 전에 우승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조6단은 만족하지 못한다.

조6단은 단 한번도 입단동기생인 이세돌9단을 잊어본 적이 없다. 세계의 강자로 발돋움한 이9단을 겨냥하며 발이 부르트도록 뒤를 쫓고 있다.

그런 조6단이기에 이번 결승전에서 백대현5단에게 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마지막 출전이 될 이번 10걸전을 우승으로 가볍게 마무리하고 한시바삐 앞으로 나가려 한다.

백5단은 입장이 판이하다. 그는 승부사라기보다는 바둑TV 해설가로 더 유명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승부 밖으로 '외도'를 해온 것이다. 아직 우승경력이 없는 백5단은 올해 25세. 바둑계엔 "25세까지 정규대회서 우승하지 못하면 대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정설이 존재한다. 백5단은 그 커트라인에 서있는 셈이다.

그는 이번 대회 A조 리그에서 전력을 다한 끝에 안영길5단.김만수4단.이용찬4단.박승철3단 등 강적들을 연파하고 4연승으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해냈다.(조한승6단도 B조 리그에서 유재형6단.원성진5단.박승현3단.박지현초단을 잇따라 꺾고 4연승으로 1위)

백5단은 말한다.

"강한 후배들 등쌀에 2선으로 밀린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번 결승전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비정한 승부세계에 익숙해진 때문인지 백5단의 어조는 의외로 담담하다. 하지만 모든 프로기사는 해설가보다는 승부사를 원하며 그것은 거의 원초적 소망이라 할 수 있다. 백5단 역시 외도를 하면서도 진검승부의 꿈을 결코 버릴 수 없었다.

이력서에 가볍게 '우승' 하나를 기록하고 정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려는 조한승6단, 그리고 외도를 하면서도 승부사의 꿈을 포기한 적이 없는 백대현5단.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조6단의 승리가 식은죽 먹기로 보이는데도 이들의 승부가 자꾸 궁금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3번기의 1국은 10월 12일 시작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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