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이래 최대 인파…"이것은 역사의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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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경 시위현장>
○…북경학생 시위대가 천안문 광장으로 행진한 장안가 등 간선 도로는 교통이 완전 두절됐다. 학생들은 10렬 종대로 질서 정연히 행진, 길이가 8km에 이르렀다.
지난 76년 문혁이 막바지에 이르러 대규모 군중이 몰렸던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한 이날 시위에서 학생들은 『오늘이 D데이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하고 『이것은 역사의 뜻』이라고 말했다.
○…별다른 사고 없이 15시간동안 진행된 이날 시위는 경찰이나 학생 모두 충돌을 피하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학생들은 『경찰이 때리더라도 주먹을 쳐들지 말자. 경찰이 욕설을 해도 입술을 달싹도 말자』고 쓴 프래카드를 앞세우고 행진했다.
○…북경의 3O여개 대학에서 출발한 학생 시위대는 천안문 광장까지 모두 6겹의 경찰·군의 저지선에 막혔으나 모두 「인파」의 힘으로 뚫었다.
경찰 저지선이 쳐진 천안문 입구에서는 학생시위대의 진출을 돕기 위해 노동자 및 무직 청년들 2백여명이 『우리가 길을 열겠다』며 앞장서 저지선을 헤쳤다.
이들 노동자들은 시위대 앞에서 경찰 등을 밀어붙이며 『학생들에게 길을 열어 주라』고 거듭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학생들은 『인민의 경찰은 인민을 사랑한다』 고 외쳤으며 저지선이 뚫리자 환호를 울리고 경찰들에게『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위대가 천안문 광장 부근에 도착했을 때 북경 38군의 비무장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트럭을 세워둔 채 저지선을 이루고 있었다.
시위 학생들은 군 트럭에 뛰어 올라 『38부대를 환영한다』면서 시위의 목적과 이유 등을 적은 전단을 군인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시위대가 도착하고 시민들이『밀고 들어가라, 밀고 들어가라』고 소리치자 군인들은 일순 화를 냈다가 두려움으로 당황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군지휘 장교가 금방 태도를 바꾸어 학생들을 향해 껄껄 웃으며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오히려 학생들을 놀리기까지 해 분위기가 두려움에서 화기애애한 쪽으로 급변했다.
군 트럭 운전석 지붕에 올라서 있던 한 지휘 장교는 군중들을 향해 재빠른 경례를 올린 뒤 손을 흔들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를 보고 박수로 응답했다.
○…이번 북경학생 시위는 노동자 등 많은 북경 시민들의 동조를 얻은 것이 특징이다.
중국 당국의 시위금지 조치에도 불구, 유니폼을 입은 병원 노동자들이 적십자기를 앞세우고 시위에 참가, 눈길을 끌었다.
한 중년 전기공은『중국의 아들들이 용기를 갖고 거리에 나오면 부모들도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모두 형편없는 세월만 살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노동자들은 학생들이 희생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가한 한 치과의사는 『나는 이제 너무 나이가 들어 군인들을 밀어붙이지 못하지만 학생들과 함께 걸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가한 한 학생은 『우리가 현정부나 공산당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조속한 개혁을 원한다』 고 말하고 「덩샤오핑」(등소평)도 혁명적인 당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그것은 「인민의 침묵」이라고 말했다』며 시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 학생은 등소평의 연설을 수록한 책에서 등의 연설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다.
【북경=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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