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정세 흔드는 '북한 미사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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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상공의 미사일 먹구름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임박(immi-nent)" "급진전" 등 한·미·일 정보 당국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은 북한의 시험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예고하고 있다.

■ 발사 징후는
연료 주입 땐 48시간 내 발사 가능

정부의 한 소식통은 16일 밤 "미사일 본체에 연료를 주입하는 단계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이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의 미사일 발사 기지에서 이미 수차례 엔진연소실험을 했으며, 기지 2~4km 반경에 군의 경비가 강화됐다고도 전했다. 전문가들은 발사대에 미사일 본체를 세운 후 1단과 2단 로켓에 액체 연료를 주입하는 데 기술 수준에 달렸지만 1주일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미사일 발사 의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액체 연료 주입이다. 발사를 포기하고 주입한 연료를 빼내는 과정이 까다롭고 20여 일이 걸리는 만큼 연료를 주입한다는 건 발사 의지가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연료를 주입하기 시작하면 48시간 안에 발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 한반도 정세는
한국 곤혹 … 일본 우파 득세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동북아 정세는 근본부터 뒤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강도 높은 대북 제재를 경고하고 있다. 미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하면 미국은 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본도 행동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조총련 등을 통한 대북 송금 규제와 북한 선박의 입항 금지 등 다양한 제재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발사를 빌미로 일본 안에선 평화헌법 개정 논의 등 보수.우경화 흐름이 가속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대북 지렛대로서의 중국 역할은 위축될 소지가 크다. 하지만 가장 곤혹스러운 건 우리 정부다. 미사일 발사 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북 제재 움직임은 정부에 남북 관계냐 한.미 관계냐의 선택을 강요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가 모든 채널을 동원해 미사일 발사를 막으려고 동분서주하는 이유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핵과 달리 미사일은 국제법으로 제재할 근거가 없다"며 "일각에서 거론되는 유엔안보리 제재는 실질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 북한 속셈은
대미 협상 타개 위한 '모험 카드'

정부는 대미 협상을 노린 벼랑끝 전술로 보고 있다. 위폐로 시작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계속되면서 북한을 둘러싼 국제환경은 꽁꽁 막혀 있다. 북한은 최근 미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평양 방문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6자회담에 조건 없이 복귀하지 않는 한 북한과 어떤 대화도 할 수 없다는 강경론을 고수하고 있다. 마치 소환하듯 힐 차관보의 방북을 공개 요청한 방식에도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북한이 이런 교착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사일 카드를 만지작거린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98년 대포동 1호 시험발사 때의 클린턴 행정부와 지금의 부시 행정부는 다르다"며 "북한 의도대로 되진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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