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아나 몸통 길이 매년 조금씩 줄어들어 … 알고보니 "엘니뇨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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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미 프린스턴대의 생태학자인 마틴 위켈스키 박사는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20년 이상 이구아나의 몸통 길이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매년 꼬리를 제외한 몸통 길이를 잴 때마다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잘못 잰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이구아나의 몸통 길이는 줄어, 급기야 올해는 20년 전에 비해 2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과학대중지 '뉴사이언티스트' 최근호의 보도에 따르면 갈라파고스 군도의 이구아나 몸통 길이는 평균 6㎝ 줄었다. 위켈스키 박사는 "이 정도면 오차범위를 크게 넘어서는 수치"라고 말했다.

갈라파고스 군도내 이구아나의 몸통 길이는 섬에 따라 28~59㎝로 다양하다. 집단 내에서 교미를 위한 자연선택이 이뤄지면 암컷과 수컷을 통틀어 단연 몸집이 큰 이구아나가 유리한데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위켈스키 박사는 그 원인을 엘니뇨의 영향에서 찾았다. 엘니뇨는 남아메리카 서해안을 따라 흐르는 차가운 페루 해류 속에 갑자기 따듯한 해류가 침입하는 이변현상이다. 엘니뇨의 영향권에 위치한 갈라파고스 군도 또한 3~7년에 한 번씩 찾아온 엘니뇨 현상으로 이 일대의 수온은 섭씨 18도에서 최고 32도까지 치솟았다. 그 결과 이구아나의 주된 먹이인 녹조류와 적조류가 퇴조하고 갈조류가 번성했다.

연구진은 먹잇감이 사라지면서 이구아나의 뼈가 줄어든 것으로 분석했다.척추동물에서 이런 현상이 관측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녹조류와 적조류를 먹였더니 뼈의 길이가 원상태로 회복했다는 점도 특이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 항공우주국(NASA)과 골다공증 전문의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구아나의 뼈 길이가 줄어드는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론의 수치가 올라갔다는데 주목했다.

인간에게도 이와 비슷한 코르티솔 호르몬의 양이 무중력 상태에서 늘어나고 그 결과 우주인에게 골다공증을 유발시킨다는 연구결과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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