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설의 허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 우리 사회가 하도 뒤숭숭해서 그런지 밑도 끝도 없는「위기설」이 심심치않게 나돌고 있다. 문 목사 사건을 계기로 한 재야인사 검거, 울산사태를 비롯한 극심한 노사분규, 끊임없는 학원가의 불안, 5월 총 파업설 등으로 사회적 긴장과 불안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근거도 진원도 없는 위기설이 돌아다니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건강과 관련해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어떤 미국 신문은 한국의 쿠데타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으니 심히 불유쾌한 일이다.
우리는 과거 유신 때나 5공화국시절 끊임없이 위기설에 시달린 기억을 갖고 있다. 그때 역시 근거도 진원도 불확실한 유언비어와 함께 3월에는 4월 위기설이, 8월에는 9월 위기설이 나돌고, 그 달이 아무 일없이 지나가면 다시 그 다음달 위기설이 나돌곤 했다.
6공화국이 들어선 후 지난 1년여 기간 그런 소리가 없다가 다시 위기설이 나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시국불안의 반증이라고 할 밖에 없고 전체 사회의 상황 악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소리가 나도는 자체가 우리 사회의 건강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볼 수 있고, 원인제거와 상황개선의 노력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대체로 위기설이나 유언비어 같은 것은 사회의 신뢰 기반이 흔들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느 사회든 시련은 있을 수 있으며 시련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위기설이나 유언비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시련에 대응하는 역량과 방식이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하는데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시련들을 관리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하는 일을 보면 확실히 국민신뢰를 받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우선 벌써 몇 개월째 계속되는 정국 불안이 그것이다. 각 정치집단이 일관성을 못 가지고 할 일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됨으로써 정치가 당연히 가져야 할 예측 가능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가령 문 목사건에 대한 정당의 어정쩡한 자세, 여야 대화를 둘러싼 각 당의 혼미등만 보더라도 바로 내일의 정국이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없게 한다.
정치가 이처럼 가??성이 떨어지면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함은 물론, 전반적인 사회불안의 원인이 안될 수 없다.
또 정부에 대한 국민신뢰 역시 최근 급격히 떨어졌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우유 부단· 나약·우왕좌왕이란 말을 무수히 들은 것만 해도 그렇고, 최근 벌이고 있는 공안작업도 기본적인 공감을 받으면서도 왠지 불안감을 납기고 있다. 재야의 공개적인 언동을 당시에는 경고도 한번 않고 방치하다가 문 목 사건이 터지자 갑자기 검거하고 수사하는 것만 봐도 일의 선후에 대한 믿음성이 적어 보인다.
우리는 현재의 시국을 외기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위기설이 나돈다는 사실 자체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새삼 경각심을 갖고 시국에 대처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 우리가 직면한 일련의 문제들이 대체로 지나치게 과장되고 위기의식이 조장되는 듯한 사회 분위기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문 목 사건만 하더라도 그렇게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큰 사건이라고 생각할 필요없이 법대로 처리하고 냉정하게 관련대책을 정비하면 그뿐인 것이며, 노사분규도 우리가 거쳐야 할 시련으로 그 홍역을 가볍게 앓을 지혜를 모을 문제다. 전체 사회가 좀더 의연하고 무게 있게, 냄비 끓듯 하는 분위기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