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그 작은 mp3 플레이어가 세상을 바꿨다고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컬트 브랜드의 탄생 아이팟
리앤더 카니 지음, 이마스 옮김, 미래의 창, 224쪽, 1만7000원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교육을 받았고 소득수준은 어떠한지 한눈에 드러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특정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다. 부르디외식으로 말하면 브랜드는 '구별짓기'의 가장 명백한 표식이다. 고도의 상품소비사회에서 브랜드는 '내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계급과 정체성의 표찰이다.

책은 그렇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한눈에 간파하게 하는 '브랜드'의 힘을 고찰한다. 여기서 브랜드는 애플의 스티븐 잡스가 2001년 선보여 디지털 뮤직 플레이어(mp3P) 시장의 최강자가 된 '아이팟(iPod)'이다. 책은 그 제목이 적절하게 설명하듯, 하나의 기술이 '컬트 브랜드'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뉴 테크놀로지 히트상품이 매니어의 열광을 거쳐 사회 트렌드가 되고 문화와 패션이 되는 과정이다.

당신이 지금 첨단의 문화도시 뉴욕에서도 진짜 멋쟁이 대접을 받으려면 흰색 몸체와 흰색 이어폰줄로 된 아이팟을 들으라고 책은 말한다. 간혹 아이팟의 대중화를 못마땅해하는 얼리 어답터(문화 조기수용자)들은 부러 검은색 이어폰줄로 교체하기도 한다. 영원한 비주류를 자처하는 고집스러운 열망의 표현이다. 아이팟의 등장 이후 미국 대학가에는 '재생목록주의(플레이리스트리즘)'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아이팟 재생목록에 드러난 음악적 취향에 따라 그 사람의 '쿨'함을 판단하는 일종의 문화 차별주의다.

책은 디지털 뮤직 플레이어가 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가져온 변화도 함께 고찰한다. 저자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아이팟의 랜덤셔플(무작위 재생) 기능. 아이팟의 엄청난 저장능력 때문에 "나도 잊고 있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무작위로 듣는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준다. "랜덤셔플 기능은 병적인 통제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기능이지만 통제의 필요를 모르는 MTV세대에게는 호응이 아주 높다"고 제임스 켈라리스 교수는 말한다.

아이팟은 클럽에서 DJ들을 몰아냈고, 아이팟을 듣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공장소에 모여 제각각 자신만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바일 클럽' 문화도 만들어냈다. 실제로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역 광장에는 오후 6시58분이 되면 아이팟 이어폰을 낀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몰려 제각각 춤추는 장면이 연출된다.

혹시 아이팟이 현대인들을 주변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은 아닌가. 저자의 답은 '노'다. "음악의 개인화는 하고 싶을 때 뭐든 하는 것이며, 그것은 환경을 통제하고 자기 경험을 관리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아이팟의 역사는 디자인의 역사'라는 말을 낳은 아이팟의 미니멀 디자인, 얼리어답터들로부터 시작되는 열성 소비자들의 자발적 홍보, 미국 내에서만 약 1조원으로 추정되는 아이팟 액세서리 시장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아이팟에 이름을 붙여주고 자기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책의 결론 격으로 "아이팟은, 기술과 인체가 결합되고 사람들이 광활한 '하이브리드 엔터테인먼트 매트릭스'에 접속하는 '사이보그 소비자주의'를 선도한다"는 소비자 연구자 마르커스 기에슬러의 주장을 인용한다.

저자는 미국의 IT뉴스 전문 서비스 '와이어드'의 편집자. 아이팟만큼이나 세련된 북디자인도 강점이다.

양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