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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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2차 세계대전의 최고 영웅은 「A·플레밍」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장군도, 용사도 아니었다. 런던의 세인트 메어리 병원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한 세균학자였다.
그가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은 마침 2차 대전 무렵이었다. 폐렴, 티프테리아, 성홍열, 각종성병으로 신음하는 병사들에겐 그 이상 기쁜 메시지가 없었다.
1928년 9월 어느 날 그는 휴가 중이었다. 어둠침침한 그의 연구실엔 실험물질이 든 샬레 (세균배양접시)가 잔뜩 쌓여 있었다. 휴가에서 돌아온 그는 한 샬레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포도상 구균을 배양할 때는 흔히 황색으로 변하게 마련인데, 어떤 한 접시가 녹색으로 변해 있었다. 「플레밍」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듬해 2월 그는 런던의 의학연구소 클럽에서 바로 그 녹색 곰팡이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얼마 뒤 옥스퍼드대의 생물학자인 「H·플로리」와 「E·체인」이라는 학자가 「플레밍」의 논문을 읽고 새로운 연구에 착수했다.
1940년 드디어 이들은 50마리의 실험쥐에 치사량만큼의 연쇄상구균을 주입하고, 그 중 반수엔 녹색 곰팡이로 만든 페니실린을 주사했다. 16시간 뒤에 쥐들은 죽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니실린 주사를 맞은 쥐들은 모두 살아 남았다.
항생제는 이렇게 만들어 졌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이 대량 생산되고 나서도 그에 관한 특허권 사용료는 한푼도 받지 않았다.
그 약이 인간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플레밍」과 「플로리」 「체인」은 1945년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지금 항생물질은 무려 1천종 이상이나 개발되어 있다. 그 동안 세균들은 그 많은 항생제들에 의해 내성이 생기고, 10명의 투약자 가운데 한명정도는 부작용으로 알레르기증상을 보이고 있다.
요즘 한국화학연구소의 학자들이 개발한 「KR-l0664」라는 새로운 항생물질은 그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을만하다. 「664」라는 기호는 6백64번째의 합성실험에서 성공했다는 수치라고 한다. 그것이 얼마나 집요한 연구와 실험의 결과인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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