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소련 진출 길 활짝 트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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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국영화가 사상 처음으로 소련의 한국교포사회에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모스크바에선「한국영화의 밤」이 열리는 등 소련진출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됐다.
정진우 감독(51)은 최근 소련국영 모스필름의 공식초청을 받아 국내 영화인으론 최초로 소련을 방문, 소련의 영화계대표들과 영화교류전반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나누고 여러 가지 기본원칙에 합의했다.
정 감독은 지난 3일부터 8일까지 모스크바에 머물며 모스필름의「노비코프」제1부사장, 국가영화위원회 (영화성)의「알렉산더·구미로프」부위원장, 영화동맹위원회 (영화인협회)의「클리모프」등과 두 차례에 걸쳐 협의했다.
이들은 이 협의에서 ▲오는 7월 열리는 모스크바영화제에 한국영화 3∼4편을 출품시키고 ▲영화제기간 중에 따로 한국영화감상주간을 마련하며 ▲영화제에 출품된 한국영화를 타슈켄트지역의 한국교포들에게 상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한국영화인의 모스크바영화학교 연수와 모스필름과 우진필름의 영화합작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정 감독은 특히 우리교포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있는 타슈켄트지역에서 한국영화를 상영하는데 대해 소련의 영화책임자들은 처음에는 난색을 보였으나 끈질긴 협의 끝에 합의를 보았다고 전했다.
또 영화제기간 중 개최장소인 종합무역센터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문제도 격론을 벌인 끝에 게양키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방문중에 타슈켄트 한인사회의 교민회장이 자신을 찾아와 교포들에게 한국영화를 공급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해왔다고 전했다.
그곳 교포들은 지난해 올림픽을 계기로 더욱더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하며 특히 한국영화를 보고싶어한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특히 아시아-아프리카영화를 대상으로 모스크바영화제와 번갈아 개최되고 있는 타슈켄트영화제에도 우리영화가 적극 참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련측이 우리 나라와 영화를 합작하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일제시대에 관동군 포로로 시베리아에 끌려가 억류됐다가 자유의 품을 찾은 한 청년의 고난을 담은 시나리오를 만들어 오는 7월 영화제기간 중에 정식 계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년 전부터 미국영화를 개방한 이후 소련극장가는 미국영화가 붐을 이루고있으며 검열이 폐지된 지금 소련의 젊은 감독들은 섹스·폭력 등이 가득 담긴 서구적인 영화를 만들고있습니다.』
정 감독은 이번 방문중에 10여편 의 소련영화를 보았는데 소련영화계는 최근의 개방정책에 힘입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감독은『수년 전부터 여러 국제영화제를 통해 소련영화인들과 개별적 친분을 다져온 결과 이번에 국내영화인으론 처음으로 공식초청을 받은 것』이라고 밝히고『이번에 합의한 사항들을 영화진흥공사 측과 협의해 우리 영화의 소련진출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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