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신이 긴요한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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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하철이 한번 재채기를 하면 서울교통 전체가 흔들리게 됨을 우리는 어제의 출근현장에서 목격했다. 지하철 파업에 대비한 비상수송대책과 시차제 적용이 마련되었지만 출·퇴근 길의 혼잡과 교통체증은 예상 밖으로 극심했다.
평상시의 서울교통마저 무질서와 체증의 연속이었는데 다가 지하철 이용인구가 지상으로 몰리게 되고 비상수송대책으로 쏟아져 나온 트럭·택시와 각종 차량의 홍수로 서울의 교통은 큰 위기를 맞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노조집행부가 무더기로 구속된 지금 형편에서 언제 다시 노사협상의 자리가 마련되어 원만한 타협점에 이르게 될지는 지극히 불투명한 상태다. 다행히 훈방된 노조원들 상당수가 근무처로 복귀하고 있어 정상운행까지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미 노사 쌍방에 깊은 불신의 골이 패어졌고 지하철이라는 시민의 공익을 무기로 해서 공권력과 극한 투쟁의 대결장 처럼 맞서 버린 작금의 상황에서 언제 또다시 오늘의 상황이 재연될지 예측하기 힘들게 되었다.
명분론에 빠진 이번 노사 협상에서 양쪽이 파업이라는 파국을 몰고 왔다는 점에서 모두가 패배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시민마저 이 교통 위기의 국면에서 패배자로 남을 수는 없지 않은가.
참다운 시민정신은 위기 속에서 단련되고 성숙된다. 지난 서울올림픽에서 입증됐던 시민의 질서의식과 자발적 참여정신이 이제 다시 한번 펼쳐지기를 대망 한다.
매표소 앞에서 참을성 있게 줄서 기다렸던 그때의 질서의식, 무려 한달 동안 우려했던 도심의 교통체증을 덜기 위해 홀·짝수 운행에 적극 참여했던 자제의 정신, 자신의 조그마한 불편을 참고 타인의 어려움을 덜어 주었던 자발적 자원봉사의 봉사정신, 이 모두가 새삼 아쉽고 새롭게 펼쳐져야 할 시민정신이다.
1천만이 넘는 서울시민이 어깨를 부딪치고 옷깃을 스치며 일상을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울타리의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한치씩 양보할 때 생겨나는 큰 폭의 공간, 이것이 공동체 정신이고 성숙한 시민의 자기 생존방식이 된다.
한치 앞을 먼저 가기 위해 폭주하는 서울의 차량과 한 걸음 앞서가기 위해 남에게 두 걸음의 피해를 주는 각박한 경쟁의식으로 위기와 어려움을 풀어 갈 수는 없다.
질서·봉사, 그리고 자제의 미덕이 서울의 교통, 서울이라는 공동체 울타리 속의 삶을 윤택케 하는 공동체 정신이며 시민정신이어야 한다.
끝없는 기다림과 엄청난 봉사와 굴욕 스런 자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질서를 방해하지 않아야 하고 한줌의 봉사로 전체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봉사여야 하며 한치의 자제력으로 전체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짧은 기다림의 질서, 한줌의 봉사, 그리고 한치의 자제력이 소중하게 받들어지게 된다.
물론 지하철파업이 빠른 시일 안에 협상의 자리가 열려야 하고 다시금 파국의 길이 아닌 평화로운 협상의 결과로 마무리되어야 함이 오늘의 서울 공동체가 맞고 있는 교통위기의 절대적 해결책임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이번으로서 세 번째 맞게 된 지하철 부분 운행 정지라는 위기관리를 시민의 몸과 마음으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라는 서울 공동체 자체의 응집력을 모으기 위해서도 질서와 봉사와 자제의 시민정신을 발휘해 보자. 지하철 한번의 재채기로 서울이 멍들지 않게끔 해보자.
질서와 봉사와 자제의 시민정신이 함양되고 확산될 때 그 정신이 곧 민주화의 정수로서 뿌리내리고 꽃피우는 씨앗이 되게끔 우리 모두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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