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이자제한법'이 뭐기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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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틴틴 여러분의 부모님도 돈을 빌릴 때가 있지요? 대개는 은행을 찾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돈을 빌리면 그 대가로 이자라는 걸 줘야 해요. 이자는 보통 빌린 돈에 대해 1년간 얼마를 주느냐의 비율(이자율)로 나타낸답니다. 즉 1000원을 빌리고 1년간 60원을 줬다면 이자율(60÷1000)은 '연 6%'입니다. 요즘 은행에 담보를 잡히지 않고 신용으로 돈을 빌리면 대략 '연 7~12% 대'의 이자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고리대금 시장에서는 '연 200%'가 넘는 무지막지한 이자를 뜯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어요. 100만원을 빌리면 1년에 이자만 최소 200만원을 줘야 하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지요. 얼마 전 경찰에 붙잡힌 한 고리대금업자는 무려 연 1300%에 이르는 고리를 챙겼다가 덜미를 잡혔어요. 그럼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왜 고리대금업자를 찾느냐고요? 은행에서 대출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 들어보셨을 거예요. 수입이 많거나 아파트와 같은 든든한 담보가 있는 사람 아니면 은행에서 원하는 돈을 빌리기가 쉽지 않답니다. 그렇다면 갑자기 돈이 필요한 서민들은 어디서 돈을 꿀까요. 사채업자나 대부업자처럼 돈 빌려주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이른바 사금융(私金融)을 찾을 수밖에 없어요. 은행.카드.캐피탈과 같은 '제도권 금융회사'들은 대개 담보를 요구하기 때문에 서민에겐 그림의 떡이지요.

이 같은 약점을 잘 아는 업자들이 서민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터무니없는 고리로 제 배만 불리고 있는 거예요. 특히 신용불량자가 돼 돈 빌릴 곳이 없어진 사람들이 고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여놓을 때가 많지요. 당연히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면서 빚덩이만 계속 늘어나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결국 경제 전체에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금융감독원.경찰 등이 함께 고리대금업자들을 감시하고 단속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대부업법이 바뀌면서 연 66%를 넘는 이자는 받지 못하게 됐지요. 그런데 며칠 전 법무부가 "이자제한법을 부활시키겠다"고 발표했어요. 법을 만들어 연 40%를 넘는 이자는 못 받게 한다는 거지요. 연 66%로는 고리대금업자의 횡포를 막을 수 없다는 게 법무부의 생각입니다.

이자제한법은 원래 1962년에 만들어졌다가 98년 외환위기 때 없어졌습니다. 당시 법도 이자를 최고 연 40% 넘게 받을 수 없도록 했어요. 그런데 이 법은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은 금리를 높게 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요구하는 바람에 폐지된 것이지요.

법무부는 이자제한법이 사라지면서 제도권 금융회사들의 이자율이 연 4~50%인데 비해 사금융시장의 이자율은 평균 연 223%로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어요. 옛날 이자제한법이 있었을 때는 이 법이 두려워 사금융시장의 이자율이 연 24~35%에 머물렀다는 것이지요. 법무부에 따르면 가까운 일본도 사채업 이자를 연 29%로 묶어 두고 있답니다. 특히 법무부가 타깃으로 삼는 건 지하에서 영업하는'무등록 사금융업자'들입니다. 등록을 하고 영업하는 합법적인 대부업체가 1만5000여 개 정도인데 비해 무등록 업체가 2만5000~3만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무등록인 만큼 감시의 눈길을 피해 불법을 저지르기가 쉽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재정경제부.금융감독원과 금융회사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습니다. 급한 돈을 쓸 사람들은 줄지 않는데 이자율만 낮추면 사금융업자들은 이전만큼 이익을 남기지 못하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법을 따르자"며 서민에게 친절히 돈을 빌려줄까요? 천만에요. 이익이 줄어든 것을 보전하려고 여러 가지 궁리를 할 겁니다. 이들은 우선 돈을 빌려간 다음 제때 못 갚을 듯한 영세민들에겐 아예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겁니다. 확실하게 갚을만한 사람만 상대하려 한다는 거지요.

이렇게 되면 정말 돈이 필요한 서민들은 돈 빌리기가 더 어려워질 겁니다. 돈이 급한 서민들은 법에서 정한 것보다 더 많은 이자를 내고서라도 사금융업자들을 찾아가려 할 것이고, 결국 음성적인 거래를 함으로써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한 캐피털회사의 임원은 "현재 수수료를 고려하면 업계 이자율이 연 50%를 넘는다"며 "그런데도 고객을 골라 돈을 빌려주는데 이자율이 낮아지면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은 더욱 대출받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자를 획일적으로 제한하면 금융회사들이 결국 돈을 잘 갚는 우량 고객들에게만 대출할 것이고, 서민들은 아예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 더 고통받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주부 김모씨는 지방의 한 저축은행에서 연 48%의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이자제한법이 되살아나면 이 저축은행은 연 40%를 넘는 이자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김씨에게 내준 대출을 회수할 것입니다. 그러면 김씨가 갈 곳은 결국 사금융시장 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일률적인 이자 제한보다는 서민 전용의 금융회사를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민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을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같은 대안 금융회사를 활성화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빌려줄 자금원을 마련하는 게 문제이지만 기업의 기부금와 정부의 정책자금 등을 잘 활용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자제한법'을 부활시키는 취지는 아주 좋은 것입니다. 서민들의 짐을 덜어주자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숱한 변수가 널려 있는 시장경제에선 강한 규제로 세게 억누른다고 문제가 술술 풀리는 건 아닙니다. 특히 사금융 시장처럼 철저한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선 역효과를 충분히 따져봐야 합니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 서민에게 되레 부담을 주면 안되겠지요.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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