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대학다워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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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려대 사태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연 사흘 동안 수업거부, 수업거부철회라는 상반된 결정이 학생회 쪽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정상적인 수업이 진행될 것인지, 항의농성과 수업거부의 극한 상황으로 갈 것인지 예상할 수 없는 혼선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확실한 부분은 학생회 쪽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수업을 정상화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수업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학생 스스로가 선택하고 어려운 경쟁을 거쳐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받기로 계약한 학습의무라는 기본사항을 방기하면서까지 무엇을 요구하려 들고 무엇을 개혁하려는지 그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
총장선출과 등록금 동결이라는 최근 운동권 학생들의 간판 이슈가 과연 학생들의 기본의무를 포기하면서까지 쟁취해야만 될 만큼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인지 전체 학생 모두가 냉정한 가슴으로 판단해야 할 때다.
더구나 대학이 지니고 있는 우리사회에서의 기대가치나 공헌도에 비춰 볼 때 대학은 소수의 교수나 소수의 학생, 소수의 재단이 소유하는 사유재산이 아니다. 국가의 장래가 걸린 공 개념으로서의 대학위상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특히 최근 고려대 사태는 올해 전국대학의 전체적 움직임을 가늠하게 될 고비가 된다는 점에서 사회의 관심과 우려의 표적이 되고 있다.
공 개념으로서의 대학이 지녀야 할 학습과 연구의 의무를 담보로 삼아 학내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총장선출에 개입하려는 학생들의 요구는 어떤 형태로든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더욱이 운동권 학생들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학생회가 말없는 다수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거부와 철회를 거듭하고 있는 최근의 움직임은 학내 민주화를 외면한 소수의 폭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 11일에 있었던 법대학생들의 수업거부 찬반투표에서 59·5%가 수업참가를 희망했다는 결과만으로도 다수의 학생이 수업을 희망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총장선출이나 등록금 동결이라는 문제는 최근 부각된 대학사회의 새로운 쟁점이라는 점에서 교수와 학생, 그리고 재단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며 연구해서 풀어 나가야 할 대학 내부환경의 새로운 문제인 것이다.
재단과 총장이 학내민주화의 걸림돌이 분명하다면 이런 저런 방식으로 풀어 보자든가, 재단의 예산편성과 학교운영 방식을 공개적으로 유도하면서 등록금 인상은 어느 선이 적정하겠다, 또는 얼마만큼 인하해야겠다는 식의 의견교환이 있은 다음 이를 수용하는 교수협의회를 통해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보다 민주적이고 원만한 해결방식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비록 그런 일들이 이해로 뒤엉킨 혼탁한 기성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청순한 이상과 명징한 이성을 지닌 대학 사회에서는 가능해야 한다고 우리 모두는 기대를 걸고 있다.
대학사회를 수십 년씩 지켜 온 교수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 그 요구를 관철시키겠다는 극한적 투쟁방식은 다수의 말없는 학생과 교수들, 그리고 사회전체가 그나마 학생들에게 걸고 있는 한 가닥 기대마저 저버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참된 의미의 학내 민주화 운동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과제라 한들 대화와 연구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고 거듭 믿는다. 소요와 폭력의 극대화 자체가 운동권의 목적이 아니라면, 또 대학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 드는「거점의 확보」에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대학의 학내민주화는 쉽고도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될 수 있다. 대학의 문제가 대학답게 해결되기를 거듭 당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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