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후유증」…부시 지도력에 "상처"|「첫 조각」거부로 행정부 구성 지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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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워싱턴=한남규 특파원】미국상원 본회의도 지난번 군사위 표결처럼 9일「부시」대통령의 첫 조각 중 국방장관으로 지명된「존·타워」전 상원 의원에 대한 인준을 부결했다.
「타워」파동을 놓고 미 언론은『기이한 드라마』로 표현한다. 이번 일이 이제까지의 관례에 별로 없던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선거일 후 5개월간을 과도기로, 또는 취임 후 1백일간을 밀월기간으로 부른다. 새 대통령이 행정부를 구성하고 정책방향을 설정하는데 아무래도 어려움과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이해아래 반대당과 언론도 이 기간 중에는 신임 자에 대한 방해와 비판을 삼가는 게 전통으로 확립돼 왔다.
과거 2백여 년의 미 역사상 장관에 대한 의회인준 부결의 전례가 겨우 여덟 번 있었지만 이런 전통 때문에 첫 조각에 대해 의회가 인준을 거부한 것은 이번이 최초인 것이다.
특히「부시」가 취임 벽두부터 대 의회 관계, 그 중에서도 민주당과의 협력관계를 강조하고, 실제로 공화-민주 양당관계와 행정부-민주당 관계가 화기애애했던 점으로 볼 때「타워」 인준을 둘러싸고 양측이 정면대결로 표변한 것이 미국사람들로서는 지극히 예상 밖의 사태인 것이다.
더구나 여자관계·업계유착과 아울러「타워」에 대해 제기된 과음혐의도 사실 의회를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라면 다소 엉뚱한 대목으로 생각되기까지 한다.
왜냐하면 의원들이 활동특성 등으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비단「타워」에만 국한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일에 대한 분석도 따라서 분분하다.
공직자에 대해 미 국민이 적용하는 도덕기준이 50년 전보다 훨씬 정화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나온다. 모델과의 염문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 선에서 탈락한「게리·하트」전 상원의원, 외국정치인의 연설을 표절했다고 해서 같은 신세가 된「조지프·바이든」상원의원, 그리고 이번「타워」등의 혐의는 그전 같으면 웃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문제들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특히 보수우파의 힘이 특히「타워」건에는 크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일이 이처럼 꼬인 좀더 근본적인 배경은「부시」에 대한 그간의 평가가 미온적이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더 큰 설득력을 지닌다.
현재「부시」에 대한 미국 내 평가는 대체로 그저 그렇다는 수준이다. 심각한 낙제점도 아니고 그렇다고 탁월한 점수도 아니라는 시각이 중론이다.
과도기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대충 각료 및 주요정책 관계자들의 임명내용과 속도 등 집권태세, 행정부의 정책 구상 내용, 그리고 전반적인 이미지 등 이 열거되고 있다.
대 국민 이미지에 있어서「부시」는 긍정적인 반응을 받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들에 따르면 60여%의 지지도를 누리고 있다. 전임자「레이건」의 집권 초 인기를 상회한다. 그러나 실제적인 면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행정부 구성의 지연이 그중 하나다.
현재「부시」는 10여명의 각료와 그 아래 주요 정책 입안자의 일부만을 임명, 그의 새 행정부는 머리만 있고 하체가 없는 형체로 비유되고 있다.
보통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결정하는「정치 임명 직」은 많은 경우 약4천명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얘기된다.
장관·차관·차관보 또는 독립기관의 장 등 이 대표적인 정치임명케이스들이다. 이중 8백 명 정도는 상원인준절차가 따르는 중책들이다. 당장 정책결정에 필요한 간부만 따져도 3백 명 수준이고 이 범주의 정책요직을 아무리 축소해도 1백10여명이내로는 더 줄일 수가 없다. 장관들을 제외한 이 같은 요직 중「부시」가 임명한 것은 고작 25명 뿐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행정부구성의 지연에 앞서「부시」는 정책문제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전이 모자란다는 좀더 심각한 비판까지 받는다.「레이건」이 국방력 강화를,「존슨」이 위대한 사회를, 심지어「카터」도 행정부 쇄신과 도덕을 집권 초 내걸었는데「부시」는 주춤거리고 있다고 꼬집는다.
70년대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유진·매카디」전 상원의원은 최근 한 기고에서『장례식에 참석하고, 현안들에 관한 입장을 수정하고, 너무 많이 흔들리는 등 계속 부통령 또는 대통령 당선자 같은 행동을 보이고 있어서「부시」를 대통령이라고 부르기가 어렵다』고 야유했다.
「타워」임명실패로 그의 팀 구성은 더욱 지연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심각한 것은 이번 일로「부시」행정부 영향력의 한계가 드러난 점이다.
현재「부시」대 민주당 대결의 전적은 0대1이지만 패전기록이 한번만 더 누적되는 경우 영향은 심각해진다.
「미첼」상원 민주당 총무는「타워」인준 부결 후 민주당 행동이 대통령직 약화를 겨냥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의원 각자의 양심에 따른 표결일 뿐이라는 해명이다.「피츠워터」백악관 대변인도 지난번 군사위 표결 때「타워」건과 행정부의 대 의회관계는 별개라고 말함으로써「부시」의 정치적 패배의 의미를 줄이려 했다.
그러나 내각 중 가장 중요한 국방장관 임명을 관철시키지 못한 충격과 그에 따른 대립 효과가 이런 말들로 지워질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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