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남편도 출산휴가 받는다|「도니」박사가 말하는 여성취업 지원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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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부다페스트=김경희 기자】거의 모든 여성들이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계속한다는 헝가리. 여성 취업 1백%를 뒷받침하는 이 나라의 사회적 지원체제를 알아보기 위해 부다페스트 국립 사회보장센터의「도니·요제프」박사를 만났다.
『각 가정의 육아문제를 국가가 돕지 않는다면 헌법상의 남녀동등권도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자녀를 기르는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부부가 모두 일할 수 없을 테니까요.』
「도니」박사는 그 구체적 지원방안의 하나로 임신·출산 휴가를 꼽았다.
급료전액을 받으면서 쉴 수 있는 24주일의 법정 임신·출산 휴가 중 최소 4주일은 의무적으로 출산 전에 확보해야 한다고.
건강 등의 이유로 본인이 원할 경우 출산 후 2년까지 직장을 쉴 수 있는데 이때는 급료의 75%만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자녀가 첫돌이 지난 후 두 돌 때까지는 부부의 결정에 따라 부인대신 남편이 휴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도니」박사는『실제로 출산휴가를 이용하는 남편은 그리 흔치않으나 어쨌든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요』라고 반문.
그밖에도 수유시간 제공, 근무시간 조정, 10세 미만의 자녀가 아플 경우 급료의 65%를 지급하는 휴가 등으로 직장여성이 어머니의 역할에도 충실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각 지역마다 탁아시설 및 유아교육기관이 충분할뿐더러, 부모가 출근길에 자녀를 맡겼다가 퇴근길에 집으로 데려올 수 있도록 온종일 돌봐 준다는「도니」박사.
『약 4백84만 명의 전체근로자 가운데 46%가 여성인데 이 여성들의 근심 걱정은 결국 헝가리 전체의 근심걱정과 직결되므로 최대한 배려한다는 것이 기본원칙』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여성들의 직종이 교사(전체의 약 90%)·법률가(약60%)등 특정분야에 편중돼 있기는 하지만「동일노동 동일임금」이 확립돼 있고 승진에 따른 남녀차별도 없는 만큼 직장생활자체의 문제는 없다는 것이 헝가리 여성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의 절대부족으로 자녀들의 정서 및 생활지도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으므로 이제는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만 돌보고 싶지만 남편혼자 벌어서는 살림을 꾸리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부부가 모두 일해야 하는 것이 헝가리의 고민이라는 것이다.
기자가「베네덱·가보르」「발라지·마리아」교수 부부를 방문한 저녁 8시쯤 4세·6세 짜리 남매는 이미 잠자리에 들어 있었는데, 헝가리 어린이들은 부모가 출근하기 전에 유치원엘 가야 하므로 어려서부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날 함께 차를 마시게 된 이 어린이들의 이모「발라지·요르시카」씨(40)는 유치원교사. 어린이들은 오전 8시까지 유치원에 도착해 아침식사·놀이·산책·점심식사·낮잠·간식 외에 매일 방문하는 의사로부터 건강상태를 검진 받는 등으로 하루를 보내다 오후3시30분부터 6시 사이에 직장을 마친 부모들이 도착하는 대로 각자 귀가한다고 했다.
이 어린이들은 부모의 결정에 따라 6세나 7세 때 국민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데, 입학에 앞서 발음·기다리는 습관 등의 생활태도와 함께 체중이 16kg 이상인지를 검사해 준비가 덜 됐다고 판단되면 다시 유치원으로 돌려보낸다고.
『국민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정규수업이 끝나면 퇴직·견습교사들이 어린이와 함께 놀아 주거나 개별지도 하다가 부모의 퇴근 무렵에 귀가시키므로 길거리에서 헤매는 어린이는 없습니다.』
이런 자녀양육 지원체제에다 토·일요일은 당연히 쉬고 금요일은 오후4시에 퇴근하는 사회에서 자녀들의 교육이 소홀해지고 있다는 걱정을 들으니 한국의 일하는 어머니들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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