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보 체계 혼란 어쩔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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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2년째 실시되어 온 현행 의료체계가 2년6개월의 경과조처만을 남긴 채 전면 바뀌게 되었다. 전국민의 건강과 이익이 함께 달려 있는 의료보험제도가 현재의 조합운영방식에서 통합 방식으로 전환된다. 이번 의료체계가 국민의 광범위한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현실적으로 모순되는 여러 문제점을 그대로 안은 채 여-야 합의라는 방식으로 안이하게 국회에서 처리되었다.
전국민을 소득수준에 따라 누진율을 적용해 보험료를 산출한다는 통합방식의 법 정신은 일견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을 돕는 소득 재분배의 사회정의구현처럼 보이나 그 법 정신 자체가 우리 현실에 적용될 때 당장 모순으로 드러나게 됨을 간과한 졸속적 법 처리였다.
도시 부유층으로 대표되는 자영업자·부동산 소득 자·금리생활자 등 소득자료 반영 율이 12%밖에 되지 않는 층의 의료비를 세원포착이 명확한 도시 임금 근로자와 농어민이 물어야 한다는 엉뚱한 현실로 드러난다.
현행 방식에 따르면 월30만원 근로자라면 4천5백원의 보험료를 월급에서 지불하지만 개 정 법에 따르면 1만원 가까운 보험료를 내야하고 70만원 소득자라면 1만5백원에서 2만5천 원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실질적 보험료 인상을 뜻한다.
개정법의 두 번째 문제점은 이 개 정이 의료체계의 현실적 여건을 무시한 이상론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의료보험이란 결국 법원진료를 위한 예비적 저축행위다. 아무리 성실히 보험료를 지불했다 치더라도 법원 측이 의 보 환자에 대해 성실하지 못할 때 의료보험은 진료를 위한 준비단계가 될 수 없다.
요양취급기간의 문제점이 그것이다. 현행 체계에는 환자의 요양취급기간을 의료보험 측에서 의무적으로 지정하고 있지만 개 정 법에는 계약제로 바꾸어 놓았다. 법원 측에서는 이미 법개정에 앞서 지정방식에서 계약방식을 요구하고 나섰다. 계약제 실시의 경우 환자의 요양기간은 법원 측 의사에 따라 결정되고, 법원은 보험수가의 경제성을 따져 의 보에 의한 환자치료를 임의로 기피할 수 있는 결과가 예상된다.
병원 측은 계약제 관철을 위해 현행 요양취급 지정 서를 반납하는 단체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그 다음 지적되어야 할 문제점은 법개정의 경과조처인 2년6개월 동안 그나마 지금껏 이뤄 놓은 의료보험체계가 전반적으로 무너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의 보 법의 법 정신이 소득재분배 또는 못사는 사람은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방향으로 흘러 영세농어민이 경과조처기간동안 보험료 납부반대 또는 소액납부요구운동이 확산될 가능성이 커짐으로써 또 다른 방향의 의 보 쟁점을 낳을 수 있는 소지를 품게 된다.
현행 조합방식의 제도에는 직장단위의 조합별 보험료 적립금 제도가 있어 직장조합의 경우 5천5백억 원의 적립금이 모여 있다. 남은 2년6개월 동안 흑자조합이 불이익을 예상하고도 현재의 흑자체제를 유지하지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 훤하다.
농어민이 현행체계에 따른 보험료에 반발하고 적정 단위 조항이 현행체계를 유지시킬 의욕을 잃어버릴 때, 2년6개월 후 의보의 기간골격은 모두 무너져 버리게 된다.
불안하게나마 시작된 의료보험체계가 12년간의 세월 속에서 그나마 현실적 질서를 찾은 지금에 와서 현행 체계를 혼란과 무질서로 몰고 가면서까지 새롭게 법개정을 서둘러야 했을 이유가 혹시 정치인들의 얄팍한 선심심리 때문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여론과 현실을 충분히 감안한 새 방향의 법개정이 다시금 검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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