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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로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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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노무현 대통령이 캐나다의 멀로니 전 총리를 또 들먹였다. 지난해 10월 북악산 산행 때도 그랬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이고 강력한 정치적 반대에 부딪쳐도 지도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며 멀로니를 입에 올렸다. 그때도 10.26 재선거 참패 직후였다. 어려운 고비마다 노 대통령은 멀로니를 떠올리는 모양이다.

두 사람은 닮은 점도 많다. 혜성처럼 등장해 순식간에 권력을 장악했다. 총리가 되기 전 멀로니는 그저 그런 노사 전문 변호사였다. 그가 몸담은 '진보보수당'은 진보인지 보수인지 이름부터 헷갈린다.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노 대통령과 비슷하다. 멀로니는 입도 험했다. 캐나다 역대 최고 총리라는 피에르 트뤼도를 "나라를 망친 비겁자"라고 비난했다. 한 유명 언론인에 대해선 "돈으로 움직이는 타락한 인물"이라고 매도했다. 지난해 출판된 '멀로니 비밀 테이프'에 나오는 내용이다. 멀로니는 공식 석상에서 이 책 저자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어 그의 험한 입을 입증했다.

총리 퇴임 뒤엔 에어버스 대리인에게 30만 달러를 받은 게 들통났다. 멀로니는 "정상적인 컨설팅 요금이며 세금도 냈다"고 잡아뗐다. 발끈한 에어버스 대리인은 "그 돈을 받고 그가 해준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맞받아쳤다. 이때부터 캐나다 언론들은 멀로니에게 'sleazy'라는 형용사를 갖다 붙인다. 한마디로 '싸가지 없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2003년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적이 있다. 마오는 1957년 "쇠는 산업의 쌀"이라며 미국의 철강 생산량을 따라잡자고 선언했다. 대약진운동의 시작이다. 1억 명 이상의 농민이 농기구를 녹여 쇠를 만드는 데 동원됐다. 두 해 연속 풍년이 들었지만 60년 중국에선 3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농기구와 일손이 부족해 논밭의 농작물은 그대로 썩어 갔다. 생산한 철도 밥솥에나 쓰는 무른 쇠뿐이었다. 마오는 그래도 "현명한 여성은 쌀 없이도 밥을 짓는다"며 고집을 부렸다. 중국 경제는 순식간에 거덜나 버렸다.

노 대통령은 왜 하필 이런 고약한 사람을 골라 역할 모델로 삼는 것일까. 한결같이 비장하고, 궁지에 몰릴수록 자기파괴적 성향을 내보인 인물들이다. 노 대통령의 "한두 번 선거로 잘되고 못되는, 그런 것이 민주주의는 아니다"는 발언에서 섬뜩한 결기가 느껴진다. 이제 모두 죽었다고 복창해야 하나. 앙드레 말로는 "오랫동안 누구를 꿈꾸는 사람은 마침내 그를 닮아간다"고 했는데…."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