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남발 괜찮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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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간평가를 앞두고 최근 정부·여당이 일종의 선심성 공약으로 보이는 대형사업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연두지방순시에서 가는 곳마다 그 지역 개발계획이나 건설계획을 발표 또는 지시하고 있고 내각과 민정당에서도 복지와 중소기업 등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예컨대 노 대통령은 대전에서는 서울∼대전간 고속전철을 가능한 한 빨리 착공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광주에서는 광양만의 국제무역항 개발·광주국제공항 타당성 조사 등 전남개발의 정책의지를 적극 표명했으며, 부산에서는 2백50만평 해상도시 건설, 서울∼부산간을 2시간대에 주파하는 고속전철의 조기건설 등을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여당은 92년까지 주택 2백만 채를 짓기로 했는가 하면 영구임대주택 25만 채를 짓는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특히 임대주택은 금년 중 4만 채를 짓기로 하고 이를 위해 추경예산을 편성키로 했으며 택지마련을 위해 녹지와 풍치지구를 활용하자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정부·여당은 갑자기 무슨 강조기간이라도 맞은 것처럼 돈이 엄청나게 드는 대형사업을 수십 건이나 내놓고 있다. 물론 이런 사업들은 모두 국민복지와 국토개발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고, 이미 정부계획에 포함돼 있던 사업이거나 지난 대통령 선거 때의 공약사업도 있다. 정부·여당으로서는 당연히 추진해야 하고 추진시기 역시 빠를수록 좋은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런 사업들이 모두 경제적 타당성과 효율성에 기 준하여 우선 순위에 대한 냉정한 정책검토를 거친 것인지, 일부에서 의혹의 시선으로 보는 것처럼 중간평가를 앞둔 선심성 사업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무엇보다 이런 사업들에 대한 예산의 뒷받침이 가능 하느냐의 문제다. 영구임대주택계획 하나만 해도 3조5천억 원이 든다는 데 재원확보 계획은 어떤지 묻고 싶다. 그리고 이런 사업들의 추진을 위해 엄청난 재정지출을 할 경우 경제안정기조는 유지될 것이며 물가상승 등의 염려는 없는지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주택의 대량 공급은 소외계층의 복지를 위해 가장 긴요한 핵심적인 사업임이 인정되고 다른 어떤 사업보다 우선해 추진할 일이지만 그것이 급하다고 녹지나 풍치지구까지 훼손해도 좋다는 발상이 옳은 것인지, 그리고 수도권밀집 완화라는 또 다른 중요한 정책목표와· 충돌되지나 않는지…등의 의문에 대해 정부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경제정책을 특정한 정치적 목표에 종속시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극력 피해야 한다. 그럴 경우 정책의 합리성·효율성이 왜곡되기 쉽고 정책에 대한 국민신뢰도 떨어져 효율적인 추진에도 어려움이 올 가능성이 많다.
셋째, 중간평가를 앞둔 이런 시기에 사업계획을 남발하는 것은 야당 측을 자극하고 국민투표 분위기의 공정성이란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여당은 이런 여러 가지 예상되는 문제점과 우려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되며, 최근 발표된 일련의 대형사업들의 합리적인 근거와 재원확보방안, 투자 우선 순위의 타당성 등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중간평가 후의 물가동향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심리가 높은 만큼 이런 사업들을 추진하면서도 경제안정을 훼손하지 않을 대책이 과연 있는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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