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승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 필라델피아의 도심지에서 하루는 돈벼락이 쏟아졌다. 1977년 7월 어느날에 있었던 일이다. 길거리엔 지폐가 낙엽처럼 우수수 굴러다녔다. 그 속에는 2O달러 짜리도 섞여 있었다.
뜻밖에 굴러온 호박덩어리를 보고 사람들은 저마다 더 많은 행운을 잡기 외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소동을 벌였다. 자동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 행인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지폐를 한움큼씩 움켜쥐고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돈자루를 잔뜩 싣고 은행으로 달려가던 트럭의 뒷문이 열리면서 자루 속의 돈 뭉치가 바람에 날려 그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무려 25만달러나 되는 돈이었다.
그러나 더 믿어지지 않는 사실은 나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시민들은 길에서 주운 돈을 경찰에 자진 신고, 24만2천몇백달러가 회수되었다. 시민들이 슬쩍 넣고 간 돈은 불과 3%였다.
서울 장안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돈 뭉치는 아니지만 화장지 더미를 싣고 달려가던 트럭에서 그 휴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 장면은 본 일이 있었다.
처음엔 재미있게 그 광경을 바라보던 시민들이 어느 사이에 모두들 길 가운데로 뛰어 나왔다. 저쪽에선 한 시민이 자진해 나서서 교통정리까지 했다. 화장지는 순식간에 말끔히 치워지고 트럭 운전사는 멋쩍은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화장지를 다시 싣고 달려갔다. 화장지를 한두개쯤 들고 가는 사람도 있음직한데 그런 일은 끝내 볼 수 없었다.
설마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화장지 값이 싸다고 그런 것은 더구나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런 궁색하고 경우에 닿지 않는 일에선 졸업을 했다고 보아야 옳다.
요즘 서울시지하철 노조는 분규속에서 시민들의 무임승차를 방치했다. 신문사진을 보면 누가 나서서 표를 받는 것도 아닌데 개찰구 옆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놓고간 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물론 무임 승차한 시민들도 85%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개탄하기보다는 누가 보든 말든 스스로 시민정신을 발휘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하철 승객은 엄연히 공중이다. 공중은 무비판적, 충동적인 군중과는 달리 비판적, 이지적인 사회집단이다.
◇고침=6일자 본란 끝 문장 「그리고 아니면…」중 「아니면」을 삭제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