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위안부재단 해산에 … 아베 “국가관계 성립 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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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1일 서울 중학동에서 열린 제1362차 정기 수요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소녀상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정부는 이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만들어진 화해·치유 재단 해산을 공식 발표했다. [뉴시스]

21일 서울 중학동에서 열린 제1362차 정기 수요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소녀상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정부는 이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만들어진 화해·치유 재단 해산을 공식 발표했다. [뉴시스]

정부가 2015년 한·일 간 위안부 합의에 따라 출범했던 화해·치유 재단을 해산하기로 결정하면서 한·일 간 긴장 국면이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고노 “수용 못한다” 반발했지만 #한·일합의 파기라는 주장은 안 해 #한국도 기금 10억엔 반환 않기로 #징용판결 이은 악재, 확전은 부담

여성가족부는 21일 화해·치유 재단 해산을 추진하고 이를 위한 법적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화해·치유 재단은 2015년 12·28 합의에서 일본이 “한국 정부가 전 위안부 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한다”고 약속한 것을 근거로 2016년 7월 출범했다. 일본이 내놓은 기금 10억엔(출연 당시 약 109억원)을 생존 피해자(각 1억원) 및 사망 피해자 유족(각 2000만원)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재단의 임무였다.

재단의 해산은 문재인 정부 들어 위안부 합의 타결 경위를 검토한 태스크포스(TF)가 지난해 “당시 합의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어긋난다.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결론 내린 뒤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런데도 1년 가까이 끈 건 한·일 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정부도 의식해서였다.

하지만 최근 정부 기류는 “정리할 것이라면 시간을 더 끌어 좋을 것이 없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만나 “위안부 할머니들과 국민들의 반대로 재단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해산을 기정사실화했다.

특히 지난 달 30일 대법원이 일본 기업들이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재단 해산부터 정리하자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재단 문제는 정상급에서부터 장·차관급에서도 이미 수차례 일본에 설명을 한 사안으로 일본 측도 이에 대한 우리 입장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결정이 전해지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 측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의 핵심인 재단을 해산하면서도 합의 파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일본이 낸 10억엔도 반환하지는 않는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올 1월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를 발표하면서 10억엔에 대해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이 기금의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7월 예비비 103억원을 편성했다.

일본은 반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1일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을 만나 “국제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며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책임있는 대응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상도 회견에서 “일본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위안부) 합의는 양국 외상들이 협의해 양국 정상들이 확인했고, 한국 정부도 확약한 것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책임을 지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형식적으로는 일본이 강하게 반발하는 모양새지만 실제 내용면에선 꼭 그렇지도 않다. 재단 해산을 “합의 파기”라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지난 10월 도쿄에서 열린 양국 차관간 사전 협의 등에서 “재단은 해산하되, 예민한 10억엔 처리 문제는 ‘향후 협의’하는 선에서 일단 덮어두자”는 절충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일 간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피해자와 관련 단체들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이에 따른 배상을 요구하고, 일본은 위안부 합의에 따라 모든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라 정부가 풀어야 할 난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한편 이날 공교롭게도 도쿄 헌정기념관에선 초당파 국회의원 모임 ‘일본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의원연맹’이 주최한 독도 영유권 집회가 열렸다.

유지혜 기자, 도쿄=윤설영 특파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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