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시험운행 무산…남북 경협까지 후유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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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제주도에서 열린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2차 회의에 참석한 북측 대표 주동찬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이 여미지 식물원을 찾아 연못에 행운의 동전을 던지고 있다. 오른쪽은 남측 대표 박병원 차관. [연합뉴스]

새 남북 경협 사업을 협의하자며 이런저런 제안을 들고나온 북한. 합의도 좋지만 성실한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남한. 4일 제주도에서 첫 전체회의를 연 남북 경제협력추진위 12차 회의는 이렇게 입장이 갈렸다. 북한이 지난달 25일로 예정된 남북 열차 시험운행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후유증이다.

북측 위원장인 주동찬 민족경제협력연합회 부위원장은 기본 발언에서 "제3국 자원 개발에 남북이 공동 참여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북한이 이미 벌이고 있는 러시아 극동지역 원목 벌채와 석탄 채굴을 예시했다. 북한이 사업권을 가진 만큼 남한이 자본과 기술.장비 등을 보태 달라는 것이다. 지난해 7월 10차 경협추진위 때 요청한 비료공장 건설도 재차 언급했다. 회담 관계자는 "북측이 새롭고 다양한 제안을 들고나온 것은 군부가 제동을 건 철도 문제에도 불구하고 남북 경협의 속도를 내자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열차 시험운행 무산에 대한 남측의 유감 표명에 북측은 "더 이상 (우리 측에) 책임 전가를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철도 문제가 자꾸 논의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2002년 8월부터 이 회담 대표로 줄곧 나온 박정성 철도성 대외철도협력국장을 이번에 빼버렸다. 정부도 김대중 전 대통령 열차 방북 문제는 이번 회담에서 거론하지 않기로 하는 등 신경을 썼다.

남측 위원장인 박병원 재정경제부 1차관은 기조 연설에서 남북 간에 사실상 합의가 이뤄진 신발.비누 원자재 지원 등을 실행할 수 있게 북측이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고 싶어도 북한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참에 북한의 버릇을 고쳐 놓겠다는 식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정부는 북측이 열차 시험운행 날짜를 다시 확정하는 데 호응하지 않더라도 이번 회담에서 경협 사업 등에 합의해 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파행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 오히려 군부 등 북한 강경파의 입지만 다져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대국민 설득 논리까지 세워 놓고 있다.

정부는 북측이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인 한강 하구의 남북 공동 모래 채취 사업 성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곳 관할권을 가진 군부가 실리(달러 수입)를 챙기게 되면 남북 경협에 대한 인식도 바뀔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남북한은 회담 일정을 6일까지로 잡고 있다.

서귀포=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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