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미국행 탑승객 미에 정보 제공은 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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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유럽 항공사들은 현재 자사 여객기를 타고 미국으로 향하는 모든 탑승객에 대한 정보를 이륙한 지 15분 이내에 미국 측에 넘기고 있다. 승객의 이름.국적.주소는 물론 신용카드 번호와 사전에 선택한 기내식 메뉴, 미국 체류지 주소, 여행 일정 등 최다 34가지에 이르는 개인정보다. 2004년 5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미국 정부가 체결한 협정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9월 30일부터는 이런 보고 의무가 사라진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를 비롯한 외신들이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유럽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가 "탑승객들의 프라이버시를 충분히 보호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이 협정을 '불법'이라고 판결하고 9월 30일자로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ECJ는 판결문에서 "미국 측이 전달받은 개인정보에 대해 충분한 정보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보다 테러와의 전쟁을 우선시 해왔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타격을 주는 것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미국은 이 같은 탑승객 정보가 테러를 막기 위해 필수적이라며 이를 알려주지 않을 경우 항공사에 탑승객 1인당 최고 6000달러의 벌금을 물리거나, 항공사 소속 비행기의 미국 착륙을 불허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협정 체결 당시 미국은 수집된 탑승객 정보를 50년간 보관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유럽 측의 반대로 3년6개월간만 보관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판결은 이 협정에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며 유럽의회가 ECJ에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내려진 것이다. ECJ는 유럽의 최고법정으로 EU의 조약과 법률을 해석하고 이를 적용하는 판결을 통해 EU 법의 이행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측은 이 판결이 내려지자 "테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동시에 기본권을 보호해주는 해결책을 찾아보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협정이 무효화하는 9월 30일 이전에 EU와 미국이 대체 협정에 합의하는 데 실패할 경우 EU 회원국들은 개별적으로 미국과 협상해 새로운 협정을 맺어야 한다.

새 협정이 체결되지 않으면 유럽 항공사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정보를 넘겨주면 프라이버시 침해를 이유로 EU로부터 거액의 벌금을 추징당하고, 정보를 건네지 않으면 미국 취항이 취소되거나 미국 측에 거액의 벌금을 물게 되는 것이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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