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혁명-개방요구로 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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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테헤란의 아침은 「바자르」(이란어로 시장)가 개강되는 오전7시부터 시작된다.
테헤란시내 중심부에 가로 세로 각10km에 걸쳐 형성된 이란내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이바자르는 야채·쇠고기·의류 등 생필품에서 한강에 수천만달러를 호가하는 실크카피트 등 이란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은 물론 윈스턴·말보로의 양담배, 미국·일본·독일 등지의 각종 최고급 전자제품까지 전세계의 모든 제품이 망라되어 있어 만국시장을 방불케 한다.
11일로 10주년을 맞는 이란혁명을 찬양하는 포스터와 현수막이 비좁은 천장을 빽빽이 메우고 있고 점포마다 「호메이니」의 대형초상화와 혁명찬양구호를 입구에 걸어놓고 있다.
바자르를 지나면서 외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물가수준. 사과1kg이 1천5백리알, 담배한갑 3백리알, 치약1개 8천리알에 각각 거래된다.
미화 1달러의 공정환율이 69리알임을 감안하면 사과는 1kg이 20달러, 담배는 한화로 갑당 3천원, 치약은 무려 1백20달러에 이른다.
79년 2월11일「호메이니」가 이끄는 혁명정부가 들어선 이래 이란정부는 코란의 율법에 의한 회교사회건설을 주창, 「팔레비」왕조시대에 허용됐던 술·마약 등을 일체 금하고 있지만 이곳 바자르에서는 조니워커(양주)한병에 3만리알에, 소련산 체리보트카 한병에 4천리알에 각각 거래되고 있으며 아편·마리화나와 같은 마약도 은밀히 거래되고 있다.
테헤란의 극장은 매일 오후만 되면 표를 사려는 젊은이들의 행렬이 5백m이상 늘어설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유동인구를 포함, 1천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수도전역에 10여개의 극장에 불과한 탓도 있겠지만 젊은이들이 욕구를 발산시킬 위락시설이나 오락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영화도 대부분이 혁명을 주제로 한 것이거나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피압박민족 투쟁사를 다룬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79년2월 회교혁명이후 이란정부는 「팔레비」시대에 성행했던 술집을 비롯, 카바레·디스코테크 등 소위 회교율법에 어긋나는 위락시설을 모두 철폐했으며 심지어는 팝송 및 자국유행음악까지도 금지시켰다.
이같은 정부의 지나친 통제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점차 사라지면서부터 젊은이들의 탈선을 조장, 마약을 복용케 하고 있으며 발각되면 남녀불문하고 삭발이라는 엄벌을 감수해야하는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비밀디스코테크가 성행하고 있고 범죄도 날로 증가추세에 있는 현실이다.
전후에 발생하는 사회혼란에도 불구, 일부부유층에서는 매주 주말마다 가정에서 파티를 열고있고 이 파티 석상에서는 이란여성들이 가슴이 깊이파인 선정적인 복장으로 댄스를 즐기며 심지어는 남녀간의 혼외정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와 도덕의 혼란이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은 전쟁후유증의 치유를 위해 「제2의 혁명성취」를 선언하고 나선 이란정부의 강경 방침에도 불구, 사회곳곳에서 개방의 물결이 서서히 일고있다는 점이다.
이란 여성들중 상당수가 혁명정부가 강요한 검정색 우사리(머리에 쓰는 차도르)대신 다양한 색상의 우사리를 즐겨 쓰고있으며 종아리가 살짝 비치는 바지차림에다 청바지를 받쳐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또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일부 젊은 세대층을 겨냥한 비밀디스코테크와 댄스홀이 등장하고 있으며 종전이후 정부의 해외여행 자유화조치 이후 수많은 이란인들이 서방대사관을 찾아 해외이민을 신청하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있다.
마약과 범죄의 늪에 빠져드는 혼란한 사회를 혁명의 기치아래 이끌고 가려는 정부, 그러나 보다 나은 삶과 문화적 욕구충족을 갈망하며 개방을 요구하는 국민 사이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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