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간경병증|이효석(서울대의대교수·내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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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간경변증은 글자 그대로 간이 점점 단단하게 굳어지는 병이다.
환자 자신이 알게 모르게 수년동안 지니고 있던 만성간염이나 알콜성간염 등에 의해서 간세포가 파괴되고 그 자리에 결체 조직이라는 큰 흠, 또는 흉터가 자리잡아 간기능장애를 일으키며 심한 경우에 배에 물이 차고 피를 토하거나 의식장애가 동반되는 만성 간질환이다. 회사원인 K씨(54)는 2주전부터 배가 서서히 불러지며 소화불량증세가 나타나 병원을 찾아왔다. 환자는 수년전부터 쉽게 피곤함을 느껴왔고 가끔 잇몸에서 피가 날 때도 있었으나 모두 나이탓으로 생각하고 지내왔다. 최근 한달 사이에는 식욕이 줄고 소화가 잘 안되는데도 체중이 5kg이나 늘었다. 결국 K씨는 진찰소견과 몇가지 검사를 통해 복수가 동반된 간경변증 환자로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간경변증의 원인은 B형 간염바이러스였다. 그런데 최근 알콜(술)의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어 이에따라 알콜성 간경변이 많아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어떤 원인이든 간에 일단 간경변증으로 진행되면 그 증상은 서로 비슷하다.
간경변증의 흔한 증상은 심한 피로·권태감·소화불량 등이지만 이들은 여러 다른 질환, 즉 정신적 스트레스·불안증·위장기능장애 등에서도 나타나므로 증상이 비슷하다고 간경변증일 가능성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잇몸질환이 없이 잇몸에서 피가 나거나 이유없이 코피가 자주 나며, 식욕이 없고 헛배가 부르면서 체중의 느는(복수가 차는) 경우에는 간기능 장애가 동반된 간경변증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한번쯤 법원을 방문할 것을 권한다.
한편 간경변증이 진행된 일부 환자에게는 심하게 피를 토해 쇼크에 빠지거나 의식이 혼미해지는 간성혼수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간경변증 환자의 약10∼15%에서는 전혀 증상이 없이 우연히 진찰이나 검사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
우리피부에 한번 생긴 흠이나 흉터가 평생 남는 것과 마찬가지로 간에도 일단 흠이 생기면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간경변증의 치료목표는 이 흠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간에 부담을 주는 과로나 술·약물을 피함으로써 정상기능을 가진 남아 있는 간세포를 잘 보존하는 것이다. 또 복수·포혈·간성혼수같은 합병증이 동반되면 빨리 병원을 찾아 전문의의 지시를 받아야한다.
다시 말해 간경변 그 자체는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다하더라도 적절한 치료로 병세의 진행과 악화를 막고 현상을 유지하면서 합병증에 의한 증상들을 호전시켜 나가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나 불편이 없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즉 적합한 치료를 꾸준히 해나가면 진행된 간경변증이라 하더라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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