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의 아픈 상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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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조선 사람 손 좀 만져 보자』-.
본사 최철주 특파원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최근 사할린을 찾아갔을 때 그곳 동포들은 그런 애절한 정으로 그를 맞아 주였다.
전쟁이 끝나고 조국이 해방된 지 43년이 지나도록 망각 속에 버려져 있던 우려들의 혈육들. 그들이 아직도 조국을 그리며 그들이 젊었을 때 강압에 못 이겨 등졌던 고향을 죽기 전에 찾겠다는 열망은 눈물겹기만 하다.
소-일-한국간에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지며 시간만 끌고 있는 동안 그들의 마음속에 쌓인 한을 이제는 풀어줄 때가 왔다. 이제는 일본의 배신이나 소련의 무성의만 탓하지 말고 우리의 자력으로 오랜 세월동안 방치된 사할린 교포들의 숙원을 풀어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본다.
사할린 교포의 문제는 일제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겪었던 우리의 민족적 상처의 아물지 않은 마지막 부분이다. 이 상처는 당사자들의 아픔일 뿐 아니라 성장한 우리 민족의 양심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가책이기도 하다.
2차 대전 직후 소련당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할린에 당시 거주한 교포는 4만3천명이었다. 이들중 대부분은 조속한 귀환이 어렵다고 판단, 소련(25%)과 북한(65%)의 국적을 취득했고 나머지 10% 정도만이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열어 놓기 위해 무국적자로 남아 있다.
4만3천명 중 약 4만 명이 남한출신이고 3천명 정도가 북한 출신이기 때문에 무국적을 택한 교포들은 그런 선택만이 언젠가 남쪽의 고향으로 돌아갈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현재 남한으로 귀환하기를 원하는 교포 수는 대략 7천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차적으로는 이들의 귀환을 위한 교섭이 소련을 대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소련이 한국과는 국교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기피해 왔지만 한-소간의 관계가 접근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그것이 장애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소련도 지난해「유대인의 이스라엘 송환방식」으로 사할린 교포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음을 비춘바 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선 안 된다. 이미 소련이나 북한 국적을 취득한 동포들에게도 한국 방문의 길이 열려야 된다. 이들의 대부분이 남한출신이기 때문이다.
좌절감과 강압에 의해 북한 또는 소련 국적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찾고자 하는 고향은 남한에 있기 때문이다 .
사할린 교포들의 송환을 위한 1차적 책임은 그들을 강제로 그곳에 징용한 일본에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들의 출국을 억제해 온 소련에도 책임이 있고, 이들의 귀환가능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탐색하지 않은 우리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서로의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은 과거의 무위를 반복할 뿐 문제 해결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
국제 적십자사나 기타 인권기구 또는 앞으로 서울에 개설될 소련무역사무소를 통해 사할린 교포들의 송환과 고국 방문을 우리 스스로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된다.
식민지 시대의 가장 큰 고통과 희생을 가장 오랫동안 겪은 사할린 교포의 한을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자긍심을 모독하는 행위임을 다같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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