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부·여당 스스로 ‘고용세습 공화국’ 오명을 씻어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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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공공기관 고용세습 비리에 대해 “발견 시 아주 엄벌에 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선 (의혹이) 제기된 곳은 사실 조사를 확실히 하고 그 내용을 보고, 조사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보고 있다”고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재인 정부의 간판정책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시행 과정에 비리와 특혜 채용이 만연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민국이 ‘고용세습 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쓸 판이다.

서울교통공사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중앙·지방 가릴 것 없이 대한민국 공공기관 곳곳에서 임직원 친인척의 고용세습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울가스공사·한전KPS·인천공항공사·한국국토정보공사 등 하룻밤 자고 나면 유사 사례가 나오고 있다. 지방도 예외가 아니다. 경상남도 산하 12개 공공기관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40명이나 적발됐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공공기관은 취업준비생에겐 ‘신의 직장’으로 통한다. 철밥통인 데다 임금·연금이 탄탄하니 재수해서라도 입사하려는 곳이다. 그러나 임직원의 아내·아들딸·조카라는 이유로 특채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니 취업준비생과 그 부모들의 억장이 무너진다. 야 3당이 그제 ‘고용세습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여당은 국정감사 결과를 보고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이 정부의 간판정책에 흠집이라도 날까 싶어 그저 덮고 넘어갈 궁리만 하려는 건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이 정부의 초심은 어디에 갔나. 정부는 즉각 전수조사에 나서고 검찰도 수사를 주저해선 안 된다. 국정조사 역시 국감 뒤로 미뤄선 안 된다. 거대 기득권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 평등·공정·정의의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언행일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