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사람 손 좀 만져 보자"|새벽 차로 3시간 달려온 할머니도 "반갑다"|최철주 특파원 한국인으론 사할린 첫 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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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제 때 강제 징용돼 사할린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한결같이 모국방문의 길이 틔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사할린에 들어갔으며 취재활동까지 벌인 기자에게 한국인들은 모두 『우리들 생활수준은 일반적으로 다른 소련 인에 비해 여유가 있어 생활에 어려움은 없으나 인도적 차원에서 모국방문은 자유스러워지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이러한 갈망에 대해 사할린 주 정부당국은『한-소간에 국교가 없어 지금 당장은 어려우나 가까운 장래에 더 좋은 관계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밝다』고 말해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기자는 소련정부가 한국언론계로는 처음으로 중앙일보기자의 사할린 체재를 허가함으로써 지난 18일부터 취재활동에 들어갔다.
기자는 18일 오후 모스크바공항에서 아에로플로트(소련 국영항공)를 타고 동쪽직선코스 8시간을 비행, 19일 아침 사할린 당 및 행정기관의 중심인 유지노사할린(남 사할린)에 도착했으며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았다.

<모스크바서 8시간>
공항에서 국경경비대의 검사를 받고 난 기자에게 사할린 주 인민대의원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의「그린코」보좌관은『당신은 사할린에 발을 디딘 최초의 한국인』이라고 환영하면서 취재목적에 대해 질문했다.
한국 기자의 사할린 도착은 교포들에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입에서 입으로, 또는 전화로, 현지신문으로 한국기자의 첫 방문을 알리는 사할린 교포들은 기자가 묵고 있는 호텔로 몰려들었다.

<교포들 호텔로 몰려>
그들은 남녀구분 없이『남조선사람이 여기를 다 올 수 있느냐』며 『손 좀 만져 보자』면서 엉엉 울거나 환성을 지르고 끌어안는 큰 혼잡을 일으켰다.
어떤 교포는『당신이 정말 남조선사람이요』『거짓말 아니죠』라며 묻다가 『그렇다』 는 대답을 듣고서는 말을 잊은 채 줄줄 눈물만 흘렸다.
그들이 식당에서나 밖에서나 한국소식을 듣기 위해 기자를 여러 겹으로 둘러싸는 바람에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먼 시골에서 3시간동안 새벽 차로 달려온 한 할머니는『내가 죽기 전에 한국에 가 볼 수 있을 것인지』하면서 꼬깃꼬깃 꾸겨진 루블화를 내놓으며 노자에 보태 쓰라고 우겨댔으며 또 한 할아버지는 산에서 캔 고사리를 갖다 주기도 했다.
20일 기자는 사할린주의 최고위 당국자인「본다르츠크」당 제1서기의「조선인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주당서기가 한국교포들과 직접 만나는 것은 그들이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혹사당하다가 1945년 해방직후 사할린이 다시 소련영토로 돌아간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화가 시작되면서 한 교포가『이 강당에 남조선 기자가 참석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서를 당 서기에게 제출했으며 그 내용이 낭독되는 순간 3백여 명이나 빽빽이 들어선 대강당이 놀라움으로 크게 웅성거렸다.
질문서에 대한 답변을 담당한 다른 서기는『남조선기자가 참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본다르츠크」당 제1서기는 이 대화에서『조선인들의 한글교육·문화행사·소련군복무에 따른 여러가지불평요인들이 해결 중에 있으며 어려운 일들이 극복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강당엔 3백 명 빽빽>
이 자리에서 한 교민이『한-소간에 경제교류도 활발해지고 관계가능성도 있는데「고르바초프」당 서기장의 민족화해정책에 따라 조선인들의 고국왕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달라』고 하자「알렉세이·그라비셰프」주당서기는『이론상 가능성이 있다』『앞으로 연구하겠다』고 답변했다.
또 인도적 차원에서「남조선 이산가족협회」구성을 허용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당신은 아주 아픈 점을 물었다. 그 문제는 앞으로 검토될 사항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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