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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성 왜곡의 놀이터 된 유튜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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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승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승호 복지팀 기자

이승호 복지팀 기자

“김치녀에게 분노의 김치싸다구로 참교육.”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모니터링을 통해 적발한 한 유튜브 개인방송 내용 중 일부다. 여성 출연자를 외제차·명품백만 좋아하는 사람으로 설정한 뒤,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를 김치로 때리는 시늉을 하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된다. 조회 수는 15일 140만회를 넘었고 댓글도 1200개가 넘게 달렸다.

유튜브는 하나의 산업이다. 연간 수십억 원을 버는 인기 ‘유튜버’도 놀랍지 않다. 이를 동경하는 수많은 이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 영상을 올린다.

문제는 일부 유튜브 제작자들이 성차별적인 내용을 홍보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정책연구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성차별적 내용이 담긴 개인방송이 유튜브에서 135편, 아프리카TV에서 34편 발견됐다. 이 중 페미니즘·성 평등 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과 비난을 표출하는 방송이 79건(약 47%)이나 됐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선정성을 앞세우지 않아 규제도 피한다. 윤지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모니터링으로 발견한 성차별적 방송은 선정적 내용보다 제작자가 가진 성차별적인 의견을 표현하고 있다”며 “대부분이 자기의 주장을 강요하기 위해 현상이나 사실을 왜곡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힘든 일을 기피해 3D 직종엔 남성들이 대부분 종사한다” “페미니즘은 공산주의와 결합하여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좌파 집단” 등의 내용이 대표적이다.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이를 지지하는 댓글에 의해 커뮤니티 내에서 확산되고 기정사실이 된다.

이들 방송이 가진 성차별적 언어와 혐오 문화의 영향은 청소년에 더 치명적이다. 유튜브는 10~20대에겐 TV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2016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 4명 중 1명이 인터넷 개인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이들은 유튜브에서 얻은 정보로 세상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성차별적 방송이 범람하면 이들은 자연스레 ‘여성 혐오’를 학습한다. 최근 초등학생들은 ‘엄마몰카’란 제목으로 자신의 엄마, 학교 선생님을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쏟아지는 동영상을 일방적으로 차단할 순 없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동영상 속 그릇된 성 의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콘텐트를 어디까지 만들 수 있는지,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절실하다. 정부와 동영상 플랫폼 회사, 제작자의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승호 복지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