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영수회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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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번 노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정국수습책을 내놓지 않아 실망했는데 이번 3야당총재회담에서도 정국교착상태를 깰 방안은 별로 발견하기 어렵다. 3야당의 3김 총재들은 특위정국의 종결, 중간평가, 지자제 등 당면현안에 관한 7개항의 합의사항을 내놓았지만 대체로 쟁점을 재확인하거나 쟁점을 격화시킨 내용들이어서 정국의 수습보다는 여야대립의 심화를 예상케 한다.
가령 중간평가를 노 대통령의 신임과 연결시킨 것이나 전·최 두 전대통령의 특위증언요구의 재확인, 지자제의 실시에 있어 시장·도지사의 직선을 요구한 것 등 모두 여당과의 이견을 지속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특히 5공 비리와 광주문제의 책임을 물어 6명의 5공 요직 인물을 거 명, 공개적으로 사법처리를 촉구하고 그 밖의 책임자에 대해 공직박탈을 요구한 것은 여야관계를 크게 악화시킬게 뻔한 일이다.
이런 합의사항의 내용들은 모두 야당들이 지금까지 요구해 온 사항이거나 으레 요구할 만한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쉽게 여기는 것은 야당들이 이런 요구만 할게 아니라 이런 요구를 포함한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처방의 제시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정국이 막혀 있으면 당연한 주장도 주장으로만 맴돌 뿐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일은 주장의 제기뿐 아니라 그것을 실현할 방법론의 제시인데 모처럼 만난 야당 총재들은 지금까지 해 오던 주장을 되풀이하는데 그친 감이 있다.
그리고 5공 인물에 대한 사법처리 요구도 무슨 기준으로 어떤 혐의를 갖고 6명을 지적했는지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 국회특위와 검찰의 조사가 진행중인 터에 굳이 6명을 지적한 것은 이들의 혐의에 관한 특별한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인지, 6명 외의 다른 인물에 대해서는 사법처리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인지 논리적 설명이 있어야 한다.
이들 6명이 거론될 만한 까닭은 능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지만 사법처리란 객관적 증거와 엄정한 수사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인데 야당 총재회담이 철저한 수사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할 수는 있더라도 조사가 진행중인 사안의 사법처리 대상자를 미리 결정한다는 것은 분별 있는 처사라고는 보기 어렵다. 또 6명에 대한 사법처리요구가 총재회담의 합의사항인지, 거론만 한 사항인지 분명치 않은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위정국의 종결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될 이런 사항이 공식합의 7개항에는 포함돼 있지도 않고 일부에서는 공식합의사항은 아니라는 말도 들리고 있어 어리둥절해진다.
야당 총재회담이 제기한 문제들은 결국 여야가 협의·절충해서 결정할 문제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야대 국회라지 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여야 어느 쪽도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관철할 수는 없게 돼 있다. 우리는 지자제나 특검제를 둘러싸고 다시 야당이 강행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정국긴장상황이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런 점에서 여야는 이제 서로 일방적인 주장만 할게 아니라 흉금을 터놓고 심도 있는 협상에 나서기를 바란다.
검찰의 5공수사도 곧 종결될 예정이라니 월말이나 내달 초 4당 영수 회담이나 4당 영수의 개별 연쇄회담을 열어 당면문제들의 해결방안을 협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악법개폐나 치안을 비롯한 민생문제, 남북한문제 등 정치권의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는 정국상황을 오래 끌어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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