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서 영주 귀국한 독립투사 김동삼 선생 유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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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조부의 공적을 잊지 않고 나라가 우리 가족들을 이렇게 불러주니 감격과 기쁨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영원히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항일무장투쟁사에 큰 자취를 남긴 일송 김동삼 선생의 유가족인 맏며느리 이해동씨(85)와 맏손자 김중생(56) 이옥순(50) 씨 부부가 18일 낮 영주귀국을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 조국의 품에 안겼다. 김씨 가족은 미수교국에 살고 있는 독립유공자가족으론 최초의 영주귀국이다.
김씨 가족은 꿈에 그리던 조국에 도착한 감격을 억누르지 못하고 웃음과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통곡하듯 감사와 다짐의 말을 거듭했다.
7세 때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해 77년만에 백발이 되어 환국한 일송의 맏며느리 이여사는 눈물을 참지 못하면서 아들과 며느리의 손을 꼭 잡았다.
김씨도 2백만 명의 만주동포가 조국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데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고향을 찾을 수 있는 자신은 『행운아』라며 마중 나온 의성 김씨 귀봉파의 종손 김승태씨(35) 등 먼 일가 친척들을 얼싸안았다.
『87년 독립기념관 건립 기념식에 정부초청으로 참석하고 돌아간 뒤 흑룡강성 당국이 우리 가족을 정치적으로 매우 높게 대우해주면서 「한국정부가 영주귀국을 허락하면 적극 협조하겠다」는 언질을 주어 영주귀국을 추진케 됐다』는 김씨는 『중국 당국은 우리의 영주귀국이 한중간 경제 및 학술·문화교류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영주귀국에 협조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흑룡강생성아성시에서 중학교 역사교사로 재직해 왔으며 현재 중국에는 성철(25) 진숙(23) 등 아들·딸·며느리 4식구가 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 등이 한국에서 자리가 잡히는 대로 이들의 영주귀국도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씨 가족은 의성 김씨 종친회장 김재춘씨, 유근창 전 보훈처장 등 일송선생 유족 귀국추진회와 당국의 도움으로 귀국케 됐다.
김씨 가족은 보훈처가 서울시와 협의, 목동에 마련해준 20평 아파트에서 살게된다. 고향인 경북 안동군 임하면 천전동의 호적도 그대로 살아있어 다른 절차없이 주민등록증을 받게된다.
일송은 1878년 경북 안동군 임하면 천전동에서 출생, 고향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다 1911년 이동령 등과 더불어 항일무장투쟁을 벌였으며 서론군정서 참모장·상해국민대표회의의장 등을 지냈다. 1929년 일경에 체포돼 1937년 마포감옥에서 옥사했다.
일송은 후에 신흥무관학교로 발전된 신흥강습소를 설립했고 독립군의 근대군대식 편제에 선구적 업적이 있는 분으로 우리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었다. <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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