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사실」의 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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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광주특위의 현장조사활동은 피해당사자인 광주시민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14일 유골이 발굴되는 부엉산의 가파른 산비탈엔 행방불명자 가족 등 1백여명의 시민이 머리띠를 두르고 참관했고 시내 중심가의 시민들도 『또 나왔다』며 화제로 삼고 있었다.
현지의 지방신문·방송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향은 얼마후 실망과 충격으로 반전됐다. 발굴작업을 주도한 이정빈 교수(서울대의대 가 일반의 기대(?)와는 반대로 『관통 흔적이 없어 총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소견을 거침없이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외견상의 소견이다. 함께 작업했던 다른 교수는 『두개골의 분쇄상태 등으로 보아 총상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놓고 있고 납성분 등 확인을 의한 X선 검사 등 정밀조사과정이 남아있다. 그러나 『5년 이상의 유골같지 않다』는 이교수 등의 말을 종합해 볼때 이 유골이 꼭5·18당시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심증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단계다.
그러나 이같은「심증」을 받아들이는 광주시민은 적어도 없어 보였다. 발굴교수의 소견에 동의하기는커녕 오히려 분개하는 이들도 있었다. 8년간 한으로 응어리진 광주시민의 마음에 비쳐진 「진실」과 비록 기초조사단계이긴 하나 이미 드러난 「사실」사이의 거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엄청난 거리는 왜 생겨났을까.
광주시민의 성에 차지않는 특위활동, 일방적으로 떠들다만 청문회, 여야 간의 시각차이, 증인들의 거짓답변 등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지만 그에 앞서 정치인과 언론보도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발굴조사전 조사반의 야당의원들은 사전조사내용 등을 근거로 『광주피해자라는 확신을 갖고있다』는 의견을 밝혔고 이것은 각 매체에 그대로 인용됐다.
여기에 한술 더떠 현지의 일부 신문은 교수팀이 이날 오후3시쯤 두개골을 발굴, 『총상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바로 그 시각에 『총상임에 틀림없다』는 인용을 멋대로 기사화해 버린 신문을 배포하고 있었다. 선입견이 사실을 덮고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올바른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현장조사활동 등에 있어 『숨겨진 사체는 모조리 찾아내야 한다』는 끓어오르는 열정에 못지 않게 『광주에서 발견된 사체라 해서 모두 5·18희생자일 수는 없다』는 가라앉은 마음의 냉정함도 절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광주에서>고도원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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