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협의기구는 바람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남북한간의 교섭과 교류는 그 대상이 정치·군사적인 것이든, 경제·체육적인 것이든 가리지 않고 만나서 토의하고 협의하는 교섭과 교류의 행위 자체를 우리는 원칙적으로 환영하고 지지한다. 교섭과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와 갈등의 해소가 남북통일을 향한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교섭과 교류의 창구역할을 누가 담당하느냐는 문제가 이미 지난해 7월의 남북학생 조국순례대행진 추진문제에서 정부와 운동권 학생간의 마찰로 첨예하게 대립된바 있었다.
이번 북한측이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을 초청함으로써 새롭게 제기될 남북학생교류문제에 있어 어제 정부가 제의한「남북학생교류 추진을 의한 민간협력기구」안은 지난해의 「정부개입의 방침」에서 한걸음 물러선 「협의·지원방침」이란 점에서 교류와 교섭을 향한 한걸음 앞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의 민간차원 협의 기구안은 남북학생교류문제를 전향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자세다. 종래의 정부 적극개입방침 보다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한국청소년 단체협의회·대학스포츠 위원회 등 교육기관단체와 전대협을 포함한 민간차원의 협의기구를 상설해 지속적인 남북학생교류를 추진하는 주체로 삼겠다는 것이다.
정부 주도형의 학생교류 추진에서 민간·학생 주도의 교류 추진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민간협의기구의 구체적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지금의 형편에서 협의기구의 내용과 형식이 어떤 모양을 갖춰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몇 가지 주문을 하고자 한다.
먼저 민간 협의기구를 발족시킬 10여명의 추진 위원 구성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고 덕망과 전문성을 고루 갖춘 인사로 망라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남북교류를 억압차단하기 위한 단체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통일의 방향과 교섭·토의의 방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자문·협의의 기능을 갖춘 단체가 되기 위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추진위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참여 단체의 범위와 선발을 이 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기본계획이 있는 한 그 구성원의 선정방향이 협의기구에서 나아가 학생교류의 방향을 결정짓게까지 되기 때문에 추진위원의 인적 구성이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다음 문제는 참여 학생의 대표성 문제다.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북한이 초청장을 보낸 학생단체는 분명 전대협이다. 이미 대학생 사회에는 전대협 외에도 전국 민주학생 총연합회·남북학생 총연합회 등 남북학생교류를 희망하는 많은 단체들이 줄을 서서 서로가 먼저 남북학생교류에 참여하겠다고 의지표명을 해오고 있다.
민간협의기구의 발족과 동시에 마주칠 이 학생단체들간의 대표성문제를 어떤 합의과정을 통해 대표성을 끌어낼 것인지가, 또 남북학생교류의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그다음 민간협의기구에 대한 대학생들의 수용자세가 어떠해야 될 것인가에 있다. 특히 민간협의기구에 대해 초청장을 받은 전대협 측의 반응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학생교류의 방향이 실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협의기구가 억압체제가 아닌 민주적 협의체이고 대학생의 대표성이 합의에 의해 도출될 수 있다면 전대협 측도 북한쪽의 초정장이 곧 대표권이라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
지난해에 보였던 과격성과 일방적 대표성 주장보다는 교섭과 교류행위 자체가 통일을 위한 앞선 한걸음이라 보고, 한 걸음 물러선 협의와 합의의 자세를 보여야할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