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꼬마의 철거반대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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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조작된 구속이다. 최진성회장을 즉각 석방하라.』
『강철같이 단결하여 임대주택 쟁취하자.』
9일 오후2시 서울 신정경찰서앞.
신정2동 철거민들의 항의시위 대열앞에 「투기정권 철거」라는 머리띠를 두른 정모양(4)이 메가폰을 잡고 노래와 구호를 외치며 2백여명의 어른시위대를 선도하고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는 뜨거운 맹세….』
『도시빈민가』 『님을 위한 행진곡』 등 운동가요가 4세짜리 앙증맞은 목소리로 메가폰을 타고 메아리지자 어른시위대는 이에 고무된듯 더욱 높아진 목소리로 경찰서와 투기정권을 규탄한다.
정양은 이미 도시빈민운동권에서는 널리 알려진 꼬마투사(?).
서울도화2동 재개발지역에 사는 정양은 이날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신정2동 철거민들이 철거민대표를 구속한 관할경찰서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어른들의 농성에 애들까지 끌어들여 어떻게 하겠다는겁니까.』
한 경찰간부의 볼멘 목소리.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항상 철거의 불안속에 시달리며 살다보면 어른이나 애들이나 살기 위한 싸움에 나서지 않을수 없게 되지요.』
철거민들은 꾜마투사의 「몸부림」 을 안쓰러워 하면서도 어쩔수 없다는 표정이다.
『정양이 다른 꾜마들처럼 동요를 부르며 걱정없이 뛰놀기를 바라지만 그런 환경이 돼야 말이죠.』
딸이 자신을 따라 철거반대 현장에 쫓아다니더니 제스스로 어느새 꾜마투사가 돼 버렸다는 어머니 김모씨(39) 의 안타까운 표정에 기자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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