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반은 정당하게 얻었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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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차를 타고 지방의 국도를 달리다 보면 앞에서 마주보며 오던 차가 옆을 비켜가면서 헤드라이트를 한두번 번쩍거리는 광경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낮의 이 불빛신호가 무슨 뜻인지를 처음 당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몇 번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그래서 상대편이 그 같은 신호를 보내오면 이쪽의 운전자도 역시 두세번 전조등을 번쩍거리면서 응답을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조금 달려가면 틀림없이 교통순찰차나 교통순경의 사이드카가 눈에 들어온다.
앞서의 헤드라이트 신호는 「교통경찰이 있으니 걸려들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요, 이에 대한 응답은 「알았다, 알려줘서 고맙다」는 답례인 셈이다. 꽤 오래 전부터 있어온 운전자들의 관행적 미덕(?)을 새삼스럽게 들고 나온 것은 이른바 「민주화시대」로 「공권력의 권위」가 요구되는 현시점에서도 이런 관행이 엄존하고 있다는 유감천만한 현실 때문이다.
이번 신정연휴에 시골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 자신 이 같은 신호를 교환하면서 공권력이 대한국민의식의 현주소를 역력히 읽을 수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도로상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통경찰의 임무는 통행하는 차량들의 교통법규 위반을 예방 또는 단속하는 일이다.
도로상의 불법과 위법을 다스리고 곤경에 처한 차량에 도움을 주는 것이 교통경찰이라면 이들을 오히려 적대시하고 운전자들끼리 그 존재를 사전에 알려주는 것은 범법군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공범의식의 발로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 쪽에서 보면 법규가 잘못돼 있으며, 이 잘못돼있다고 생각되는 법규를 근거로 단속을 하는 공권력에 대한 연대적인 저항인 셈이다.
법규상 지방국도에서의 차량지정속도는 시속70km로 돼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규정을 지키는 차량은 거의 없다. 누군가 고지식하게 이 규정속도로 차를 운전한다면 왕복2차선 길에서는 원활한 교통소통의 장애물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현실상황을 무시하고 스피드 건을 들이대며 「과속」딱지를 떼려는 순찰경관은 원성의 대상일 뿐이다.
더군다나 이 같은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인 법규를 빌미로 해서 음험한 거래가 성립되고 따라서 법규 적용의 형평마저 깨져버린 그러한 교통단속이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도로상에서 차량끼리의 전조등 신호야말로 왜곡된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집단적 저항이요, 조롱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새해 들어 강력한 공권력의 행사를 표방하고 나선 데 대해서는 국민의 공감과 호응이 절대적인 것 같다.
오랫동안 권위주의 체제아래 억눌려 있던 국민들의 욕구가 재작년 6월이래 일시에 폭발하면서 사회가 다소 시끄럽고 불안해진 감이 없지 않다. 학생들의 시위, 노사분규를 비롯한 각 계층의 개혁 또는 개선요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반면에 권위주의 체제의 비호에만 급급해 왔던 공권력이 체제의 붕괴와 함께 그 권위와 권능에 깊은 상처를 입음으로써 국민의 불신을 받고 무력증에 빠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이라도 하듯 과격시위에 의해 경찰관서와 법원청사 등 공공기관이 습격 또는 점거 당하는가 하면 엄숙해야할 재판정이 소란으로 수라장이 되기도 한다. 이익 집단들의 요구들이 과격행동에 의해서만 표출되고 심지어는 제자들에게 수범해야할 교사들까지도 농성과 데모를 의사표시 수단으로 택하고 있다. 방범령을 비웃듯 잇달아 살인·강도가 발생하고 있으며 조직적인 인신매매 범죄가 경쟁이나 하듯 날뛰고 있다.
이러한 무법·불법의 치안부재상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공권력의 무능을 탓하고 그 강력한 행사를 희망하는 것은 납세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여기서 깊이 유념해야할 사항은 공권력이 발동되는 법적 근거가 공권력의 개입을 초래하는 사태의 도덕적 동기 보다 설득력을 가져야 그 발동된 공권력은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승복을 받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발동되는 공권력은 그 대상의 신분이나 지위에 차등을 두지 않고 공정하고 공평하게 적용돼야만 그 권위와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발동자들이 명심할 일이다.
수백명의 인명이 살상된 사태에 대해 어느 누구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고, 잔혹하게 인권을 유린하고 문자들이 대로를 활보하고, 공금을 유용·횡령한 자들이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는 세태, 그리하여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탈주범의 절규가 국민들의 공감과 동정을 사는 상황 속에서는 공권력이 제 구심을 하기는 힘든 것이다. 신뢰와 권위를 잃은 공권력은 이마 공권력이 아니다.
양 한 마리를 훔친 늑대가 그것을 입에 물고 제 굴을 찾아가다 도중에 사자를 만났다. 사자가 늑대에게서 양을 빼앗자 늑대가 화가 나서 사자에게 대들었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일이요.』
그러자 사자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 넌 이 양을 정당하게 얻었다는 말이냐.』 2천여년 전에 「이솜」이 갈파한 진리를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공권력의 권위에는 공권력 자체의 엄정한 도덕성이 전제되는 것이다. <편집 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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