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우리, 효자예요 … 외국계 기업들, 억울해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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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매출액 1조원을 넘긴 업체가 21개. 총 고용인원은 약 6만7000여 명. 본지가 최근 전자공시(dart.fss.or.kr)한 국내 외국계 기업(금융회사 제외)의 2005년 실적을 분석한 결과다.

굴삭기 전문업체인 볼보건설기계코리아와 DVD드라이버 등 광 저장장치를 만드는 도시바삼성스토리지테크놀러지코리아 등이 지난해 '매출 1조원클럽'에 가입한 반면 한국소니전자는 한국 내 사업을 축소해 매출 1조원 기업에서 빠졌다. 한국소니전자는 광 저장장치 핵심부품을 만드는 업체로 가전제품 등을 수입 판매하는 소니코리아와는 다른 회사다. 2004년 매출 1조원을 넘긴 외국계 회사는 모두 19개였다. 국내외 기업을 막론하고 국내에서 지난해 1조원 넘게 매출을 올린 기업은 총 164개다.

◆한국 경제 돕는 외국 기업=대형 외국 기업들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수출을 돕고 있다. 한국HP는 지난해 컴퓨터용 각종 저장장치와 모니터 등 50억 달러어치를 국내 중소 부품기업에서 구입해 본사에 보냈다. GE코리아도 발전 장비 부품 등 7억 달러를 국내에서 구매했으며, 월마트는 침구류 등 국내 중기 제품 6억5000만 달러어치를 사들여 전 세계 매장에서 판매했다.

고용 규모도 늘었다. 매출 1조원 이상 외국 기업의 전체 고용은 2004년 5만 8812명에서 지난해 6만6882명으로 31% 늘었다. GM대우는 최근 2년 동안 2000명 이상의 직원을 뽑았다. 2003년 말 1만2525명이던 직원은 현재 1만4752명으로 늘었다.

올해도 이미 600여 명을 뽑았고, 이달 초 300명가량을 더 뽑겠다고 발표했다. GM대우 관계자는 "2004년 45만 대였던 수출 물량이 지난해 115만 대로 증가하는 등 생산량이 늘어 고용을 계속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전기.전자업체 지멘스는 한국을 연구개발(R&D)기지로 육성하고 있다. 다음달 중 경기도 분당에 연구원 130명 규모의 의료기기 연구개발센터 문을 연다. 초음파 진단기기 개발 기지다. 이 회사는 또 네트워크 장비업체 다산네트웍스를 2003년 인수한 뒤 당시 약 200명이던 직원을 500명으로 늘리면서 전 직원의 절반을 연구기술직으로 채웠다. 2008년까지 1500억원을 투자해 기술전문 회사로 키운다는 포석이다.

◆부정적 여론엔 부담=워릭 모리스 주한영국대사는 16일 대사관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외국 기업인들은 가끔씩 한국의 지나친 민족주의를 우려하고 있다"며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한국 정부 쪽의 발언이나 언론 보도를 접하면 겁을 먹고 투자를 주저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외국 자본 등이 잇따라 세무 조사를 받고, '기업을 인수했다가 되팔아 거액의 차익을 챙긴다'는 여론이 일자 이를 염두에 둔 언급이다. 지동훈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 부소장은 "한국에 진출하려는 유럽 기업들 중 외국 업체에 대한 반감을 걱정하는 곳이 많다"며 "특히 까르푸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퍼지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까르푸는 많은 돈을 한국에 투자해 스스로 사업장을 세우고 직원을 고용해 사업을 했다는 것. 그러다 실패해 철수하는 것인데, 이를 고용이나 시설 투자 없이 기존 기업의 주식만 인수했다가 이를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투기성 자본과 똑같이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지 부소장은 "까르푸는 한국 사업을 매각할 때도 인수대상 업체를 투기성 자본이 아닌 유통 업체로 제한하는 등 사업과 고용이 이어지도록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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