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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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번 신정 연휴에도 세계 도처에서 각종 대형사건과 사고로 얼룩져 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사건 하나가 있었다. 외신 면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난 한 토막의 기사. 그것은 재일 교포 이득현씨의 부음이었다.
이씨는 일본의 「편견재판」에 희생되어 살인누명을 쓰고 22년 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마루쇼 사건」의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76년 가석방되었지만 옥고에서 얻은 심부전증과 뇌경색 증 등으로 반신불수의 몸이면서도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그동안·재심을 청구하고 있었다.
이씨의 부음을 접하고 세상 인생무상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 같은 한 많은 생애에 비해 그의 종말이 너무나 처연한데 있다. 그는 정초 한 후원자 집에서 먹던 귤이 목에 걸리는 바람에 호흡곤란으로 숨을 거두었다.
전후 일본의 재판사상 가장 큰 물의를 일으켰던 이른바 「마루쇼 사건」의 시말은 이렇다.
지난 55년 일본 시즈오카 시의 한 화물 취급소 여주인이 피살 체로 발견되었다. 일본 경찰은 사건발생 추정시간에 화물을 싣고 현장부근을 지나갔다는 일인조수의 증언 하나만으로 트럭 운전사였던 이씨를 살인강도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자신의 결백을 백방으로 주장했지만 아무런 물증도 없이 3심을 거쳐 무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이 사건은 60만 재일 교포에 대한 일본 사법기관의 민족적 편견의 상징으로 부각되어 각계에서 구명운동을 벌였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에서는 백만인 서명운동이 벌어졌는가 하면, 이 사건을 계속 추적했던 한 일본인 기자는 이득현 사건을 극화하기도 했다.
이씨는 지난 82년 불편한 몸을 이끌고 48년만에 잠시 고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나는 결백하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누명을 벗어 죽은 처의 한을 풀겠다』고 말 했었다.
그는 22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한번도 조국을 잊은 적이 없었노라고 했다. 그래서 가석방되던 날 기자들 앞에서 조금도 더듬거림 없이 우리말을 하여 모두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비록 스스로는 누명을 벗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일본의 많은 양심은 그의 무죄를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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