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내가 삼성 에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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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투수에게는 순번이 있다. 1선발, 2선발, 3선발로 불리는 '숫자'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는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자신의 값어치로 인정된다. 1선발은 '에이스'다. 에이스의 덕목 가운데 하나가 팀의 연패를 끊는 것이다. 그래서 1선발은 '스토퍼'로 불리기도 한다.

앳된 얼굴에 아직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삼성 오른손 투수 배영수(22.사진)에게 18일 대구 두산전은 의미가 컸다. 4연패에 빠진 팀의 분위기는 잔뜩 가라앉았다. 기아에 2위자리를 내주고 3위로 밀리면서 한국시리즈 직행 대신 준플레이오프를 치를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도 생겼다. 그래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그런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나선 것이다.

부담이 되는 경기였지만 돌려놓고 생각해보면 '기회'이기도 했다. 선발진의 '2인자'에서 에이스로 올라설 수 있는 그런 기회였다. 에이스 대접을 받던 임창용(12승3패)은 최근 구위가 떨어져 선발진에서 제외된 상황. 더구나 배영수는 지난 12일 대구 한화전 이후 4연승의 상승세에 있었다. 자신의 연승을 5연승으로 이어간다면 시즌 12승째. 임창용과 함께 팀내 최다승 투수가 되고 최근 페이스로 봐서 당당한 에이스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소중한 기회였다.

배영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 7이닝 동안 8안타를 내줬지만 2, 3회 한개씩의 병살타를 유도해 두산의 공격루트를 잘라냈다. 팀 타선은 일찌감치 터져 3회까지 5-0의 리드를 안겨주며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2실점으로 상승세의 두산 타선을 막아냈고, 팀은 8-2로 이겨 4연패를 끊었다. '스토퍼'로서의 몫을 해낸 것이다.

2000년 프로에 데뷔한 배영수는 선발투수로 자리잡은 2001년 13승8패(방어율 3.77)로 처음 두자리 승수를 기록, 삼성을 이끌어갈 기대주로 떠올랐지만 지난해 6승7패, 방어율 5.53으로 부진해 '간판'으로 불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올해 결정구로 구사하고 있는 체인지업이 위력을 되찾으면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지금 삼성이 포스트시즌을 시작한다면 가장 중요한 경기인 1차전 선발은 '당연히' 배영수의 몫이다.

대구=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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