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 벗는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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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년 벽두에 뱀 얘기부터 하기엔 뭣하다. 그러나 기사년의 「사」자는 뱀이라는 뜻 말고 다른 뜻도 있다. 방각으로는 동남향 시각으로는 아침 10시를 의미한다.
동남향은 집을 지을 때면 가장 좋은 자리다. 양지가 발라 그런 집은 우선 밝다. 아침 10시 는 하루가 시작되는 가장 발랄한 시간이다. 어느 직장이나 이 무렵이 되면 바빠진다.
새해 덕담은 더도 말고, 밝고 생기 넘친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으로 대신하면 좋겠다.
뱀도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독교에선 뱀을 악마나 사악한 무리의 심벌로 치지만 예부터 많은 민족의 민속에선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선 뱀을 사자의 영혼으로 생각하는 민속도 있다.
유럽 사람들은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대지는 큰 백이 휘어 감고 있다고 믿었다. 수호신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뱀을 생산 신으로 보는 민족들도 있다. 남자를 상징하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농업, 생산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풍요의 신으로 삼는 것이다.
이 지구상엔 그런 뱀이 약 2천 종이나 살고 있다. 그중 독을 가진 뱀은 2백 50종 내지 3백 종으로 분류한다. 어떤 나라에선 그런 뱀을 예사로 먹는 경우도 있다. 홍콩만 가도 시장에서 마치 닭고기를 팔듯 뱀을 그 자리에서 잡아준다. 장을 보는 아낙네들은 거리낌없이 뱀을 찬거리로 사간다.
요즘 태국에선 독사중의 독사라는 코브라를 사육도 한다. 우리 한국사람들이 가장 고마운 고객이라는 것이다. 코브라의 생피를 받아 마시고 몸End이는 고아서 먹는다. 정력에 좋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하긴 국내에서도 코브라를 수입해 판다.
아무튼 뱀해가 역사상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만들어낸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인류를 사랑하고 구원하러 온 예수도 뱀띠다. 「간디」나 문호 「괴테」「앙드레·지드」도 뱀해의 태생이다.
그러나 러시아혁명·세계공황·태평양전쟁 등 온 세상을 들었다 놓은 일들이 모두 뱀해였으며, 나라 안에선 기사보호조약 ·광주학생사건·한일협정 등이 역시 뱀해에 있었던 일들이다. 길흉이 교차하는 해인 것도 같다.
그러나 뱀해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사년도 그런 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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