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시위 변질되면 미국 비자면제 장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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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반대하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미국 워싱턴에서 원정시위를 계획하고 있어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19일 원정시위 계획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5개 부처 장관 합동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 원정시위 어떻게 준비하기에=원정시위를 준비하고 있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3월 28일 발족했다. 영화인대책위.농축산대책위.교수학술공대위와 노동계 등 270여 개 단체가 가입돼 있다. 평택 범대위에 속한 138개 단체 대부분도 운동본부에 가입해 있다. 조준호 민주노총위원장, 정진영 스크린쿼터 공동대책위원장, 김세균 교수학술공대위 공동대표 등이 발족식에 참석한 대표 인사들이다.

운동본부는 발족식 때 이미 미국 원정 투쟁기획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이들은 활동 자료집에서 원정투쟁이 필요한 이유를 '초반기 미국이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강하게 한국협상단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큰 만큼 1차 협상 대응 투쟁이 아주 중요하다'고 적었다.

운동본부 측은 내부 보안상의 이유로 원정시위의 구체적 계획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 측은 원정시위대 규모가 100여 명으로 민주노총과 농민단체 등이 주축을 이룰 것으로 보고 있다. 선발대 5명이 13일 워싱턴에 도착해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고도 밝혔다.

정부가 합동 담화문을 낸 데 대해 운동본부 측은 성명서에서 "정부가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홍콩 원정시위와 연계하며 폭력시위로 매도하려 한다"고 반박했다. 운동본부 정책기획팀의 김동규 간사는 "현지 동포 단체들이나 FTA에 반대하는 미국 단체들과의 연대집회.삼보일배.촛불문화제 등 평화적인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미국 내 반전반세계화단체 등과 협의해 합법적인 집회 신고를 마쳤으며 위법성 시비에 대비해 법률 자문까지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운동본부 측은 22일 정부청사 앞에서 원정시위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 제2의 홍콩 사태 우려하는 정부=정부는 19일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천정배 법무부 장관, 박홍수 농림부 장관, 이상수 노동부 장관 등 5개 부처 장관 공동 명의로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정부는 담화문에서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고 국민 모두가 우려하는 원정시위 계획을 즉각 중단하고 평화적이고 합법적 절차에 따라 협상에 대한 입장과 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호소했다. 반 장관은 "상대국까지 가서 시위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며 "원정시위가 미국과의 비자면제 협정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어 국민 모두를 불편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정부가 긴장하는 건 해외 원정시위의 폐해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홍콩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때 농민 등 원정시위대가 불법시위로 현지 경찰에 1000여 명이나 연행된 전례가 있다. 당시 시위대는 처음에 삼보일배 등으로 현지 언론들로부터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시위가 격화하면서 각목 등을 사용하는 폭력시위로 변질돼 국제 여론의 비난을 샀다. 정부는 담화문에서도 "홍콩에서의 폭력시위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되면서 국가 이미지를 크게 훼손했던 충격이 생생하다"고 언급했다.

미국 워싱턴의 한국대사관은 비상대책반까지 가동하고 있다. 정달호 외교부 재외국민영사담당대사는 "원정시위 선발대가 이미 15일 미국 현지 언론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했다"며 "미국 경찰도 잔뜩 비상이 걸린 상태"라고 말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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