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한 숲 속은 먼저 와 기다리는 행상 아주머니들이 우리들을 맞아 주었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었고 반찬그릇 자리가 빈 도시락을 친구들 앞에 꺼내 놓으려니 창피한 생각이 들어 얼른 풀지 못했다. 집안이 부유했던 석남이는 하얀 쌀밥에 계란말이 반찬에다 사이다까지 내놓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석남이를 에워쌌고 석남이는 친한 아이들한테만 사이다를 한 모금씩 먹어보게 했다. 물론 가깝지도 않은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먹고 싶은 마음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사이다를 사러 갔지만 그 돈으로는 사이다 한 병을 살 수가 없었고 애꿎은 사이다병에 눈맞춤만 하다 돌아서야 했다.
반찬도 없는 밥을 수양버들 그늘 밑에서 혼자서 먹으면서도 동생이 반찬을 제대로 가져갔을까 몹시도 궁금했다. 사이다 때문에 보물찾기도 장기자랑도 별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 노을 지는 하늘에 사이다 병을 수없이 그려 대며 이담에 커서 사이다를 원없이 먹어보리라 다짐을 했다. 말 못하는 세월은 몇십 년을 통째로 삼켰는지 내 아이들 소풍까지 끝을 냈는데, 지금도 파르스름한 사이다 병만 보면 어릴 적 소풍날이 떠올라 열두 살 소녀가 되곤 한다.
강병숙(주부·56·서울 남가좌2동)
26일자 소재는
'부부싸움' 입니다
분량은 1400자 안팎. 성명.직업.나이.주소.전화번호를 적어 2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