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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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문경관 몇 명이 결국 재판을 받게 되었다. 「삼민투」사건으로 구속되었던 김근태씨를 수사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고문수법은 여기 다시 옮기기도 몸서리쳐진다. 칠성판 모양의 널빤지 위에 담요를 깔고 그 위에 피의자를 알몸으로 누인 다음 담요를 말아 몸을 감싼다. 이쯤 되어도 벌써 으스스한데 발목, 무릎, 허벅지, 배, 다리 등을 다시 결박한다.
눈은 밴드로 가리고 얼굴엔 수건을 덮어씌우고 그 위에 물을 붓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 고문의 기법은 수사관의 삭만큼이나 많다. 우리는 이런 고문을 한 두 해도 아니고, 나라가 선지 40여 년이 되도록 받아왔다.
헌법을 고쳐도 9번이나 고치고, 꿈같은 공약이 쏟아지는 선거를 치러도 몇 십 번은 치른 나라다. 집권자까지도 말로는 민주주의를 한다고 외치지 않았는가.
헌법이 시원치 않고 법이 모자라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육법전서 어디를 뒤져보아도 고문을 눈감아주는 조문은 일찍이 한번도 없었다.
결국 정치의 신의문제다. 제아무리 민주주의를 외치고, 고속도로를 놓고, 길거리마다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고, 백화점에 외제상품이 바리바리 쌓여도 나라 한구석 어느 밀실에서 고문이 이루어지고 처절한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는 한 국민들은 사는 것 같지 않다.
이제 우리는 진짜 민주주의를 할 채비를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낡은 시대가 깨지는 고통을 겪고있다.
그러나 아직 새 시대는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
우리가 소망하는 민주주의는 교과서에 적혀있는 그대로가 아니라도 좋다. 국회의사당의 마이크나 매스컴에서 홍수를 이루는 말들처럼 화려한 것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오직 하나, 권력기관의 고문만이라도 없어진다면 그것으로 민주주의와 새 시대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 사람이 살면서 어이없는 매를 맞고, 짓밟히고, 눈이 뒤집혀도 꿈적 못하고 어디에 하소연도 할 수 없다면 그보다 더 기막힌 일이 있는가. 권력자들이 다른 눈부신 공약들은 다 미루어도 우선 고문을 없앤다는 약속만이라도 지키면 국민들로부터 믿음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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