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확대·쌀풍년에 크게 힘입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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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의 2배에 달하는 원화절상과 큰 폭의 임금상승에도 불구하고 올해 우리경제는 12.1%의 실질성장을 이룩함으로써 86년 이후 연3년째 12%대의 고율성장이라는 새 기록을 세웠다.
특히 올해 12.1%의 성장률은 미국의 3.9%, 일본의 5.8%(이상 IMF 전망)에 비해 2∼3배나 높을 뿐 아니라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대만의 7.1%나 싱가포르의 10%를 크게 앞지르는 것이어서 가히 「세계 최고속 성장국」으로서의 자부를 가질만하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올림픽 후의 경기퇴조 우려를 말끔히 씻었으며 IMF 8조국 이행에 걸맞게 선진경제에 바짝 다가서게 됐다.
당초 예상(10%)을 크게 웃도는 올해 이 같은 높은 성장의 배경으로는 우선 내수확대를 꼽을 수 있다. 연간 원화 절상폭이 16.5%에 이름에 따라 수출기업들이 내수개발에 힘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임금인상으로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국내 소비가 급신장, 성장을 뒷받침한 것.
국내 소비는 민간소비가 승용차·에어컨 등 내구소비재와 의료보건비 증가에 힘입어 전년비 8.1% 늘어났으며 정부부문도 국방비 지출 등에 힘입어 10.4% 신장됐는데 여기에는 올림픽 관련 지출도 한몫 거든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11%에서 내수부문이 차지한 기여도는 8.9%로 수출부문기여도 5.3%(수입은 마이너스 5.5%)를 크게 웃돌았다.
고율 성장의 또 한가지 이유로는 가파른 원화 절상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점, 이는 수출기업들이 원화 절상분을 대부분 수출단가 상승·원가 절감·기술혁신 등으로 맞서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원화 절상을 수출가격 인상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우리상품의 수출가격이 질에 비해 크게 낮았다는 얘기도 되지만 앞으로는 수출가격 상승의 여지가 그만큼 줄어 들었다는 의미도 안고 있다.
농작물의 풍작도 경제성장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 농림어업 부문이 지난해 마이너스 4.3% 성장에서 올해는 일기가 좋아 8.4%의 이례적인 높은 성장을 보였으며 특히 쌀의 작황이 지난해보다 3백 90만섬 늘어난 것은 GNP 성장률을 0.5%포인트 끌어 올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고율성장 뒷면에는 적잖은 문제점도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우선 86년 이후 똑같은 12%대의 성장이라 해도 내용 면에서는 올해 성장률은 86, 87년에 비해서는 뒤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인데 제조업 성장률이 지난해 16.4%에서 올해는 13.1%로, 설비투자 증가율은 14.7%에서 9.7%로, 수출 증가율은 24%에서 11.3%로 각각 후퇴한 것이 그 같은 예다.
나아진 점이라곤 농림어업밖에 없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날씨가 좋았던데 힘입은 것이고 보면 크게 평가할 일이 못된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의 성장을 1백점으로 본다면 올해의 성장은 90점 안팎이라는 성적표가 가능할 듯 싶다.
또 국내기업들이 올해까지는 원화절상을 그럭저럭 잘 극복했다고는 해도 수출증가세의 둔화는 역시 우려되는 대목이다. 86년만 해도 수출 및 수입 증가세(물량기준)는 각각 26.5%, 18.5%로 큰 차가 있었으나 지난해에는 24%와 21.2%로 수출입 증가율의 차이가 크게 줄었으며 올해는 수입이 13%로 수출증가율 11.3%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내수기반이 확충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수출정도가 국내경기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원화 절상 및 그에 따른 수출 증가세의 둔화는 내년 및 앞으로의 국내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내수확대라는 것이 경제의 대외 의존도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한 측면도 있으나 그것이 지니는 과소비라는 다른 면에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예컨대 컬러TV를 한대 보유하던 가정이 2대 또는 3대를 갖는 것은 내수확대라 해도 과소비라든가 빈부격차의 확대라는 차원에서 별로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앞으로 미국등 선진국들로부터의 원화 절상 및 통상압력이 한층 가중될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연속 3년 12%대의 성장을 이룩한 우리나라에 대해 더 빠른 원화 절상과 농산물을 비롯한 각종 상품의 수입개방, 관세 및 비관세장벽 철폐요구가 한결 드세질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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