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13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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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채태사는 청하현 현감에게 말이 들어가지 않도록 단속을 하면서 진문소에게 은밀히 친필로 편지를 써서 인편에 보내었다.

'진군 보게나. 자네가 동평부 부윤으로서 부현을 잘 다스리고 있다는 소식 늘 듣고 있네. 자네를 가르치고 추천한 사람으로서 뿌듯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네. 이번에 청하현에서 살인 사건이 동평부로 올라온 모양인데 아무쪼록 청하현 현감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도록 하게나. 그쪽에서 이미 처리된 문제를 진군이 나서서 새로 캐보아야 별로 진척될 것도 없고 괜히 청하현과 마찰만 일으킬 뿐이네. 듣자하니 죽은 자는 이미 화장을 하여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사건은 그냥 없었던 일로 덮어두게나. 분명한 증거가 있는 무송의 살인 사건만큼은 자네의 판단대로 재판하게나.'

자신의 은사요 후원자인 채태사의 친필 편지를 받고 진문소는 고민에 빠졌다. 자기 확신대로 무대의 사인(死因)을 재조사하려고 했다가는 청하현 현감과 불편한 관계가 될 뿐만 아니라 스승과 사이가 틀어질 것이 뻔하였다. 청하현 현감은 자신의 후배이기 때문에 불편한 관계가 된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여겨지지만 채태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채태사의 성격으로 보아 한번 틀어지면 영영 돌이키기가 힘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진문소로서는 출세를 하는 데 있어 강력한 후원자 한 사람, 아니 유일한 후원자를 잃어버리는 셈이었다.

미궁에 빠져 있는 무대 살인 사건을 캐기 위해서는 자신의 꿈과 야망까지도 다 포기해야 하는 판인데 그것만큼은 진문소로서도 힘든 일이었다. 그 사건의 진상을 다 캐지도 못하고 도중에 동평부 부윤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진문소는 무대 사인을 재조사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 사실을 알고 무송이 거칠게 항의하자 진문소가 무송에게 타협안을 내놓았다.

"자네가 어떤 이유로 이외전을 죽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외전을 죽인 것만큼은 분명하니 교수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중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무대의 사인을 재조사하는 일을 하지 않는 대신 너에게 교수형은 면하여주겠다. 곤장 마흔 대에, 먹물로 얼굴에 죄명을 새기는 묵형(墨刑)을 가하고, 2천리 밖으로 군사를 붙여 추방하도록 하겠다."

진문소는 옥에서 무송을 끌어내어 판결문을 읽어주고 곤장 마흔 대를 맞도록 하였다.

그러고 나서 일곱 근 반이나 되는 쇠칼을 목에 씌우고 얼굴에 두 줄로 묵형을 가하였다. 그 다음 압송 공문을 만들고 호송관 두 사람을 붙여 무송을 2천 리 떨어진 맹주로 압송하도록 하였다.

그날 무송은 호송관들과 함께 동평부에서 청하현으로 돌아와 숙소에서 짐 정리를 하였다. 가재도구들은 모두 팔아 호송관에게 여비로 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무거운 쇠칼을 쓰고 얼굴에 두 줄로 먹물이 새겨진 무송의 처참한 모습을 훔쳐보며 안쓰러운 듯 가만히 혀를 찼다.

무송은 무엇보다 영아를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일에 신경을 썼다. 이웃에 사는 요이랑에게 영아를 맡기며 간곡히 당부하였다.

"이 아이가 참으로 무서운 일들을 당하여 아직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이 아이를 잘 돌보아주시면 제가 사면을 얻어 돌아오게 될 때 그 은혜를 몇 배로 갚아드리겠습니다. 제발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식처럼 돌보아주십시오."

동네 사람들은 무송이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내 대장부인 줄을 아는지라 몇 푼씩 돈을 모아 주기도 하고 부식과 쌀들을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무송은 사병들이 싸놓은 짐들을 가지고 호송관들의 감시를 받으며 맹주로 머나먼 귀양 길을 떠나갔다. 때는 사람들이 명절 기분으로 젖어드는 중추절 무렵이었다.

무송은 동네 어귀를 벗어나면서 바람에 휘날리는 풀들을 바라보았다. 저 풀들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 것인가. 언제 돌아와서 저 음란한 년놈들과 부패한 관리들을 처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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