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조정기능 강화」 포석-새 함장 맞은 경제팀의 색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새로운 경제팀도 예외 없이 「개각」 아닌 「조각」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주요 경제부처의 장관 중 동자부의 이봉서 장관을 제외하고는 그간의 공과에 크게 관계 없이 전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새로운 경제팀이 당면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경제정책기조의 일관성」을 어떻게 유지하느냐다.
그렇지 않아도 대내외적으로 급변하는 정치·경제 환경 속에서 안정·개방 등의 정책기조가 각 이익집단들과의 거센 마찰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경제정책의 「순항」이 어려운 마당에 각 「함장」들이 모두 한꺼번에 새로 기용됐기 때문이다.
이번 경제팀의 조각은 정부의 면모를 일신한다는 정치적인 「절대명제」에 부응하면서도,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염두에 둔 흔적을 발견 할 수 있다.
문희갑 경제기획원 차관의 청와대 경제수석 발탁에서 그 같은 흔적을 바로 읽을 수 있다.
새로 입각한 조순 부총리는 최근 개각이 있을때마다 그의 「학식」과「덕망」으로 부총리뿐만이 아니라, 몇 안 되는 총리감으로 빠짐없이 거론되던 학자다.
정치나 행정 폭에 깊은 연분이 없는 순수학자 출신인 만큼 포부와 경륜에 관계없이 현 난국을 헤쳐 나가는데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이에 비해 문희갑 신임청와대 경제수석은 이를테면 「경성」이다. 과거 예산실장 시절부터의 그의 「소신」과 「추진력」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관료 사회에서의 소신을 뒷받침해주는 위로부터의 「신임」은 아직도 두텁다.
따라서 새 경제팀에서는 경제수석의 보이지 않는 「조정기능」이 크게 강화되고, 경제 총수로서의 부총리는 그 「인물됨」으로 일단 결정된 정부정책의 대 국민·대 국회「설득」에 나서게 되리라는 것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같은 포석은 경제에 관한 한 6공 출범 이후 청와대의 조정기능을 가급적 「자제」하고, 경제기획원과 부총리에게 기능을 일임해왔던 노 대통령의 경제운용 「스타일」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그 간 새로운 스타일의 경제운용을 하고 보니 각 부처의 이익 대변적인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져 경제정책이 「표류」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데 대한 반성인 것이다.
실제로 문희갑 수석은 최근 노 대통령으로부터 신임 경제수석의 「역할」에 대한 모종의 「언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학자출신의 장관기용이 관료조직의 특성상 해당부처의 정책기조를 바꾸기에는 힘이 들며, 문 수석은 정통 기획원 관료출신으로 경제기획원에는 문 수석과 생각의 궤를 같이하는 관료조직의 뿌리가 깊고, 재무부 장관에 재무부 출신으로 「실무」에 밝은 이규성 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이 「복귀」했다는 사실 등도, 「청와대 중심의 정책기조 유지」에 가장 큰 역점이 두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이 밖에 상공부장관에 기업인 출신인 전임 안병화 장관에 이어 이번에는 학자출신인 한승수 의원이 기용된 것을 보면, 상공부에 대해 「비관론」적인「발상전환」을 기대하는 뜻을 읽을 수 있고, 박승 건설부 장관의 임명은 그간의 수고에 대한 「대접」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새 경제팀은 청와대의 조정기능이 활성화되고, 부총리의 정치적 역할이 커지는 가운데, 지역개발·수입개방·농외소득지지·안정기조유지·산업 구조조정 등의 현재의 정책기조를 그대로 유지 또는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수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