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내각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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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2·5개각은 형식상 노 정권의 제2차 내각구성이지만 실은 첫 조각과도 같은 성격이다. 5공 세력과 타협의 산물로 나타난 1차 내각이 엄청난 5공 비리로 인해 퇴진할 수밖에 없었던 그 동안의 상황논리에 비춰보면 새 내각은 5공 청산의 바탕 위에서 민주화개혁의 추진을 최대의 과제로 하는 내각임이 분명하다.
새 내각의 면면을 보면 바로 이런 과제에 합당하게 여겨지는 인물도 있고, 여전히 그 얼굴이 그 얼굴이구나 하는 미흡함을 주는 인물들도 있다.
청산대상이 되고 있는 구시대와는 분명히 선을 긋는 내각의 출현이 시대적 요청이자 국민의 바람이기도하지만 집권세력의 체질과 가용 인적자원의 한계성 때문에 이 정도의 구성에 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이번 개각의 기준으로 알려진 군 출신·5공 인물 등의 배제원칙은 충분히 반영됐다고 보기 어렵고, 민주화 개혁에 걸 맞는다고 국민이 신뢰할만한 인물들을 과감히 기용하는데도 미흡함을 주고 있다.
다만 그런 중에도 일부 학계인사와 야당성 인사를 포함시킨 것을 보면 나름대로 국민 여망에 부응하려고 고심한 흔적은 읽을 수 있다.
새 내각으로서는 미흡한 신선감이나 기대감을 실제 일을 통해 충족시킬 수밖에 없다. 국민들로서도 첫인상만 갖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므로 이제부터 노 정권의 2차 내각은 오늘의 시대적 상황과 국민 욕구를 정확히 인식하여 청산과 개혁작업을 능동적으로 성실히 추구하는 길 밖에 없다.
오늘의 상황은 흔히「혁명적」이라 할만큼 각계 각층의 욕구 분출현상이 나타나고 지난 40년간 일찍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높은 수준의 민주화와 자율과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껏 6공 정권은 이런 분출하는 국민의 에너지에 떠밀려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청산도, 개혁도 제대로 하지 못한 어정쩡한 입장에서 우왕좌왕 해온 게 사실이다.
따라서 새 내각은 상황을 직시하고 그것이 요구하는 것을 냉철히 인식, 판단하여 정확한 우선 순위에 따라 확실하고 책임감 있게 실천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위시해서 총리나 장관이나 모두 시류에 따라 표류하지 않고 정권의 자기중심을 확고히 잡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하다고 본다. 정권이 이 눈치 저 눈치를 보고, 이 여론 저 여론에 떠밀려 청산도 아니요, 개혁도 아닌 모습을 다시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개각의 한 특징은 민정당 인사의 대폭 입각인데 이것이 여권 내부의 단순한 감투 안배로만 끝나서는 안되며 여권의 역량집중체제로 가동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처럼 당 따로, 내각 따로 하는 식이 아니라 여권의 총력체제로 난국수습에 임하는 책임내각의 성격으로 끌고 가야 하리라 보는 것이다.
이처럼 확고한 자기중심의 확립과 책임의식 아래 새 내각이 해야할 일은 우선 진행중인 5공 비리의 진실규명과 마무리의 조속한 추진이다. 국회와 검찰의 조사와 수사를 능동적으로 신속히 추진함으로써 빨리 과거로부터 탈출토록 하는 작업이 가장 급하다.
이와 병행하여 민주화 개혁의 가시적 추진을 해야한다. 지금껏 말로만 한다고 하던 각종 민주화조치를 실제 행동으로 하나씩 실천함으로써 6공 정권의 민주화 의지를 국민이 더 이상 의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청산과 개혁 작업의 바탕 위에 새롭게 고양된 민주화의수준에서 국민통합을 가능케 할 단·장기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거기에는 경제적 정의와 인간적 정의가 현실에서 가능한 최대 수준으로 반영돼야할 것이다.
이런 몇 가지 요청은 대부분 하나하나 따로 할 성격이 아니며 범행해서 복합적으로 신속하게 추진돼야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새 내각은 당장 첫날부터 무거운 책임감으로 일에 나서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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